18. 우주의 모습
1. 고전 우주론의 세가지 유형
가.창조론: 存祐化作因說 (기독교의 우주론)
우주의 창조는 물론, 그 안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그 원인이 神에게 있다고 보는 견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 (구약성서 제1장 창세기편)
만일 모든 것이 神의 뜻에 의해 일어난다고 하면, 우리들이 나쁜 업을 짓는 것도 神의 뜻이란 말인가?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면 왜 노력이 필요한가?
현실 세계의 인간의 죄악과 의지조차도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것을 진리로 인정할 수 있는가?
나.운명론: 宿作因說
우주의 창조는 물론, 그 안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그 원인이 과거에 지은 바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
만일 모든 것이 과거에 지은 바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면, 우리들이 나쁜 업을 짓는 것도 그 때문에 짓는다고 해야 할 것이고 의욕도 노력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우연론: 無因無緣說
우주의 창조는 물론, 그 안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아무런 원인 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견해
2. 불교의 우주론
가.業力說
인간의 의지적 작용을 불교에서는 '업(業)'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업의 필연적인 반응을 '보(報)'라고 합니다. 우리 현실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근본적으로 이런 業報의 인과율에 의해 삼세에 걸쳐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고의로 업을
지으면 반드시 그 보를 받나니 현세에 받기도 하고 내세에 받기도 하느니라. 그러나
고의로 지은 업이 없으면 보를 받지 않느니라
『중아함 권3 思經』" 이것이
불교에서 설명하고 있는 업력의 내용입니다.
따라서 불교가 바라보는 우주의 근원적인 힘 즉 우주를 움직이고 있는 궁극적인 힘은 바로 중생들 자신의 '業力'인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우주 안에 있는 전 중생들의 이러한 공통적인 업을 '共業'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세계는 공업의 소성(所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을 되풀이하는 천체의 세계는 우주 속에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실로 무량하여 허공의 양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특히 주목해야 할 바는 세계의 생성을 '중생의 의지적 業力'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며, 변천 소멸 그리고 다시 생성되는 과정에 있어서도 업력에 의한다는 입장이 한결같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즉 우주의 근원적 힘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로 귀결됩니다. 이보다도 더 간결한 우주론이 또 있을까?
이것은 우주를 神의 창조로 보는 기독교적인 우주론이나 또는 성주괴공을 기계적으로 반복한다고 보는 우주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불교의 우주관은 이러한 업력설로 다한 것이 아닙니다. 업력설에서 연기론으로 이어지면서 우주의 본질을 밝히려는 불교의 미묘한 교리는 중층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나.緣起論
유한한 생명을 가진 나 자신에서부터 그 크기가 엄청나게 큰 천체에 이르기까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어떤 예외도 없이 고정된 실체 즉 독립된 자성(自性)은 갖고 있지 않으며 상호연관이라는 연기에 의해서만 현현할 수 있다는 견해로써 제법무아(諸法無我)이며, 인연이 화합하면 잠시 존재하고 인연이 별리하면 허망하게 흩어질 뿐이므로 제행무상(諸行無常) 이라는 이론입니다.
이 상태에서 있음과 있음, 있음과 없음은 상호연관이라는 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어서, 어느 순간에 그들이 현현한다 하여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며, 어느 순간에 그들이 멸한다 하여도 실로 없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이러한 상호연관의 이론은 다만 원자라든가 천체라는 물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듯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은 전체와의 상호연관 위에서만 비로소 정의될 수 있으며 이를 불교에서는 중중무진 법계연기(重重無盡 法界緣起)라고 합니다.
이러한 상호연관의 이론을 시간과 공간에 접목시키면 대폭발 이론이 정립되어 나옵니다. 대폭발이란 단순한 거대한 폭발과 같이 멀찌감치 서서 구경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대폭발 이전의 우주의 모습은 무엇인가?” 또는 “대폭발이 일어났던 지점이 이 우주의 어디냐?” 등의 질문은 성립되지가 않습니다. 대폭발은 문자 그대로 이 우주의 시작이므로 대폭발과 함께 시공간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폭발 이전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며, 대폭발이 일어난 지점은 이 우주 전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개념이고 시간과 공간마저도 이 우주와의 상호연관 하에서만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공간까지 포함하여 모든 존재의 나타남은 인연에 의하여 生起하게 됩니다. 형상이 있는 色으로서 나타난다고 하여도 그 자체는 불변의 자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요소가 화합하여 연기하는 것일 뿐이므로 이를 무자성공 (無自性空) 혹은 공성(空性)이라 합니다. 이는 색성공(色性空) 즉 色의 성품이 그대로 空임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3. 현대 물리학의 우주론
가.우주 그리고 인간의 모습
지금으로부터 150억년 전 어느 날 우리의 이 우주는 빅뱅 즉 대폭발로 시작되었고,
45억년 전의 어느 날 그 우주 안에 지구라는 천체가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다시 10억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이 지나면서 기묘한 인연의 화합에 의하여 지구에는 생명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35억년 동안 무기물의 변모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생명 진화의 역사가 계속되어 오늘날에는 150여 만종의 다양한 생물체가 지구 위에 살고 있습니다.
그 다종다양한 생물 중의 하나이면서 겨우 수백만년 전에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人間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신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지 않은 문제까지를 포괄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사고는 외적으로는 자연 현상의 배후 원리와 우주 근원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으며, 내적으로는 '나란 무엇인가?’하는 자신에 대한 내적 성찰의 문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인간 정신이 미숙하고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을 때의 인간은 자기 자신이 그리고 자신이 사는 지구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我執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면서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고, 태양은 우리 은하를 이루는 수천억 개의 은하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세계관이 상정하였던 인간이 어떤 특권적인 지위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은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도 다른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조상을 가졌으니 一體同根이며,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어서 일체평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나.우주의 기본 구성요소
현대물리학은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물질을 소립자(세포(분자(원자(소립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대물리학자들은 삼라만상의 기본 구성요소인 소립자는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입자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작은 단위라 할지라도 질량과 부피가 있는 것입니다. 즉 존재라는 세계의 절반은 오관으로 인식할 수 있는 성질 즉 입자성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파동이라고 하는 것은 질량이나 부피와는 무관한 하나의 에너지 흐름(氣)입니다.즉, 존재라는 세계의 나머지 절반은 오감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성질 즉 파동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의 존재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적 개념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의 존재가 아주 조그만 입자로 있으면서 동시에 광대한 공간에 퍼져있는 파동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현대물리학은 그것이 사실임을 밝혔습니다. 量子場理論이 바로 그것입니다. 양자장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입자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입자라고 하는 말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 무언가 고립된 실체를 가정하는 것입니다. 量子場理論에 의하면 우리가 입자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독립된 실체는 존재하지 않고 다만 여러 場들의 순간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그 반응결과가 입자처럼 보일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20세기 현대물리학에 이르러서는 그렇게 확실하게 구분되는 것으로 보였던 시간과 공간마저도 사실은 하나의 연속체라고 하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시공간 연속체 이론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공간연속체 이론은 연기론에 시간과 공간을 적용한 ‘重重無盡 法界緣起’의 현대적인 표현이며, 양자장이론이 설명하고 있는 소립자의 생성소멸과 상호전환은 질량(色)을 떠나서 파동(空)이 존재하지 못하며 파동(空)을 떠나서도 질량(色)이 존재하지 못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이라는 불교의 우주관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시공간연속체 이론과 양자장 이론의 핵심은 이 우주가 확실하게 둘 즉 이원성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즉 겉으로 보면 둘로 보이는데 그 깊은 속을 바로 들여다보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현대물리학은 입증해 보이고 있습니다.
4. 마음을 어디로 向할까?
가.부분은 전체와 같고 전체는 부분과 같다.
전체는 부분과 꼭 같고 부분은 전체와 완전하게 같을 수 있다는 사실 즉 나뭇잎을 예로 들면 나뭇잎 속의 조직구조를 미세하게 파헤쳐 들어가면 어느 한 부분에서 나뭇잎 전체의 모양과 정확하게 동일한 모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부분은 전체인 나뭇잎을 완벽하게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Fractal 이론’입니다.
가장 조그마한 세계인 원자의 세계는 가장 거대한 우주 삼라만상의 세계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띄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질의 기본요소들이 모여 핵을 만들고 그 주위에는 전자들이 궤도를 정해서 돌아가며 서로 끌고 잡아 당기는 일련의 현상들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며 다른 태양계와 우리의 은하계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거대한 우주의 운행상태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조그마한 원자의 세계를 연구하던 아인슈타인이나 호킹같은 많은 미시 물리학자들이 궁극에 가서는 우주의 신비를 연구하고 우주 에너지의 생성기원을 파헤치는 우주 천체물리학자 즉 거시 물리학자로 변신하였습니다. 이것은 가장 작은 부분이 가장 큰 전체와 같다는 자연의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즉 '전체는 부분과 꼭 같고 부분은 전체와 완전하게 같을 수 있다'는 'Fractal 이론'은 '한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머물고 있다(一微塵中含十方)'라는 화엄경의 세계와 정확하게 일치하게 됩니다.
나.색즉시공 공즉시색
수행이란 바로 물질과 파동, 색과 공 즉 이원성을 넘어서는 하나의 자리 그곳을 찾아 가는 과정이며, 깨달음이란 하나된 그 곳에서 걸림없이 사는 모습입니다.
얼마나 많은 깨달은 이들이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고,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이 둘이 아니고, 본체와 현상이 둘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강조하여 왔습니까?
다.眞理란 무엇인가?
자기 외적인 대상을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그리고 가장 믿을 만하게 설명하였던 학문이 현대물리학이라고 한다면, 인간 자신의 내부 문제를 가장 치열하게 다루면서 마침내 그 모든 외적 조건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 즉 해탈이 가능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인 것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시작한 佛法이라는 체계입니다.
현대물리학과 불교라는 인간의 이 두 가지 정신활동 사이에는 시간적으로는 약 2,500년이라는 간극이 존재하고, 다루는 내용이나 방식마저도 판이하게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실험과 관찰을 위주로 하는 현대물리학의 세계 이해가 오직 명상과 참선만으로 이루어진 불교적 세계관으로 정확하게 접근해오고 있다는 또 하나의 불가사의를 우리는 20세기에 들어와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미시세계에서 '불확정성의 원리'를 도출하여 양자역학을 확립한 하이젠베르크(W. Heisenberg)는 이렇게 술회하였습니다 : "원자이론을 포함한 거대한 우주 존재 드라마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석가모니가 일찍이 부딪혔던 인식론의 문제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다음은 20세기의 대표적 원자물리학자인 보어(N. Bohr)와 오펜하이머(J. R. Oppenheimer)의 독백입니다 : “원자물리학의 근본과제들은 불교사상 속에서 매우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앞으로 물리학자가 추구해야 할 것은 옛 지혜의 예증이며 장려이고 그것을 한층 갈고 다듬는 일 뿐이다”.
진리는 하나이며, 모든 학문과 종교체계는 궁극에는 진리라는 자리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진리는 어느 한 사람의 말로 說해지거나, 어떤 종교나 학문의 이름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說해지거나 表現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의 모습으로 그냥 드러나 보여지는 있는 그대로의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의 섭리야말로 가장 수승한 眞理의 스승입니다.
5. 오늘의 Key Word
我相을 버리고 우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가가 살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