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點 檢
Ⅰ
초심자를 위한 10가지 助言
1. 초심자를 위한 10가지 助言
첫번째 조언: 생사의 문제를 꼭 해결하겠다는 굳은 마음을 내야 합니다.
현실세계와 나의 심신이 모두 인연으로 이루어진 거짓 존재라면 그것을 주재(主宰)하는 실체는 무엇일까? 그 실체를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오롯한 발심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두번째 조언: 의정(疑情)을 일으켜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또한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이에 대한 분명한 의심이 일어나야 합니다.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닫고, 작게 의심하면 작게 깨달으며, 의심하지 않으면 아예 깨닫지 못합니다.
세번째 조언: 一心으로 정진하여야 합니다.
참선할 때 '죽음'이라는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늘 생각하면서 자기의 몸과 마음을 죽은 상태와 똑같은 상태로 만들어 봅니다. 그렇게 되면 오직 이 문제를 밝혀야 하겠다는 그 한 생각만이 눈 앞에 남게 되며 이 때의 한 생각이란 하늘을 찌를 정도의 긴 칼과 같아서 무엇이든 갖다 대는 족족 베어 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집중된 마음을 一心이라 합니다.
수행자는 죽어서 살아나지 못할까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살아만 있고 죽지 않을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네번째 조언: 고요한 경계를 조심하여야 합니다.
참선 수행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고요한 경계에 빠져들어, 자기 자신을 우주가 사라진 듯한 적막 속에 갇히게 하는 태도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은 번거로운 곳을 싫어하고, 고요한 곳에서는 대부분 염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참선을 하는 수행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시끄러운 바닥에서만 내내 살던 사람이 일단 조용한 경계를 맛보고 나면 그것이 꿀이나 되는 양하고 달갑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런 병통이 계속되면 수행자의 심신이 마를 대로 마르고 적막할 대로 적막해져서 아예 인식작용이 없는 상태 즉 無知의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니 이는 목석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다섯번째 조언: 자기 공부에만 매진하여야 합니다.
참선할 때에는 마음을 똑바르게 곧게 하여 남의 인정 사정에 끌리거나 남과 비교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자기 공부만 성찰하여야 합니다.
여섯번째 조언: 존재의 실상에 대한 의심 덩어리(疑團)를 깨어야만 합니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萬法歸一 一歸何處 : 趙州禪師)
헤아릴 수 없는 오랜 겁 전부터 본래 갖추어져 있는 존재의 실상 즉 오롯한 이 이치(理致)는 소리도 없이 고요[寂寂]하게 한 번도 움직인 일이 없으니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수행자는 산을 보아도 산으로 보이지 않고 물을 보아도 물로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길을 걸어가도 걷는 줄을 의식하지 못하며, 앉아 있어도 앉아 있는 줄을 몰라야 합니다. 많은 인파 속에서도 한 사람도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이 온통 의심 덩어리 하나뿐이니 세상을 하나의 의심 덩어리로 뒤섞어 놓았다 하겠습니다. 이 의심 덩어리를 깨트리지 않으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궁극에는 수행자가 자기의 알음알이를 다 떨어버렸을 때, 천지가 뒤 바뀌면서 자연히 거꾸로 용솟음치는 한 줄기 파도가 일어나니 이를 일러 의단(疑團)을 깨트렸다고 합니다.
일곱번째 조언: 또렷하게 깨어 있는 상태로 수행하여야 합니다.
참 선을 하는 수행자는 쥐를 잡으려는 고양이처럼 분명하고 또렷하게 깨어 있는 상태로 존재의 실상을 觀하여야 합니다.
존재의 실상은 현상이고 현실입니다. 실상관법의 수행은 현실과 가장 가깝게 밀착할 수 있는 성품을 키워 나가는데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상의 도깨비 굴 속에 들어앉게 되어 주어진 현실을 부정하고 허상을 실체인양 착각하며 깜깜한 채로 일생을 다 보내고 말 것이니 참선을 한들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여덟번째 조언: 옛 스승들의 공안이나 조언에 천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수행자는 옛 스승들의 공안를 알음알이로 헤아려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비록 그런 방법으로 하나하나의 뜻을 깨닫고 넘어간다 하더라도 그것은 옛 스승들의 공부이며 수행 결과였지 자기 공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또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참 선이 추구하는 존재의 실상은 언어와 문자 이면(裏面)에 작용하는 실체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문자를 따져 연구하거나 옛 스승의 조언이나 외우고 다녀서는 안됩니다. 이런 일은 무익한 단계를 넘어 공부에 장애가 되며 진실한 수행이 오히려 알음알이로 전락해 버리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이렇게 하여 언제 '마음의 움직임이 완전히 끊어진 자리(心行處絶)'에 이르르겠습니까?
아홉번째 조언: 불교를 믿지 말고 자기 마음을 믿어야 합니다.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卽心卽佛 : 華嚴經)"라는 경전의 말씀은 누구나 믿습니다. 그러나 "네가 부처냐?"라고 물으면 영 어긋나버려서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이것이 무슨 병통입니까?
마음 밖에서 法을 얻으려 하지말고, 삿된 業과 習을 맑히고 밝히면 자기 마음 그대로가 부처임을 철저하게 믿어야 합니다.
열번째 조언: 직접 부딪쳐 깨달아야 합니다.
수행은 깨닫겠다는 마음만으로는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길바닥에 주저 앉아서 집에 도착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끝내 집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니, 반드시 모름지기 계속 걸어야만 집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만 가지고 깨닫기를 기다린다면 끝내 깨닫지 못할 것이니, 오직 직접 부딪쳐서 行하여야 합니다.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잠이 깊이 들고 나면 자연히 깨어나고, 꽃은 피어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피어납니다. 꼭 같은 이치로 깨달음은 기다리지 않아도 수행의 공덕이 쌓이고 쌓여 인연이 맞으면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입니다.
2. 마음을 어디로 向할까?
사람이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습관적인 의지력만으로 집착과 탐심을 떨쳐 버리고 자유의 세계에 도달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수영을 하여 건널 수 있는 강의 폭은 한계가 있습니다. 저 피안의 언덕은 배와 바람과 그리고 건너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력(願力)이 함께 할 때만이 다다를 수 있습니다.
배도 바람도 인연공덕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임을 자각하고, 佛性을 꽃피울 인연 끈이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을 때 시절인연이 도래할 수 있습니다.
前生의 공덕으로 今生에 걸림없이 살 수 있는 대복을 갖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태어난 이후의 자기 주인은 지금 현재, 여기 이 자리의 자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 의식을 망각하여 바른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이다 사고(思考)의 그릇에 때가 묻기 시작하면 의식이 어두워져서 그릇된 습관의 근기(根氣)를 끊어내고, 올바른 수행의 길을 바로 찾아 가기는 참으로 어려운 法입니다.
3. 오늘의 Key Word
참 禪은 타협을 넘어선 불변의 실체이고, 순수의 근본을 찾아가는 마음의 행로(行路)와 같기에 현실적인 이해관념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