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인 연 과 보

 

1.무엇에 대해 알아볼까?

우리의 삶은 因 . 緣 . 果 . 報를 중심으로 엮어진다. 인연과보에 대한 논의는 무엇이 우리 삶에 종자[인]가 되며 그 종자는 어떤 과정을 통해[연] 성장하여 열매[과보]를 맺게 되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는 곧 우리의 삶이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가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본 토론에서는 우리 삶의 첫 출발점 곧 중생1)의 근본 생명의 뿌리는 무엇인가를 정리하여 보고, 이 생명의 뿌리는 어떻게 성장·변화하여 그 열매를 맺게 되는가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중생의 고뇌에 찬 삶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나 영원한 대 자유인이 되는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2. 삶의 출발점은?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인가 아니면 진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인가? 우리 생명의 근본 뿌리는 무엇인가? 불교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의식한 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의식 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것은 의식적 작용뿐이다[一切唯心造]. 어리석고 무지한 중생은 단지 이 의식의 작용을 내 것[我所]이라고 취하는 마음과 그리고 그것을 나[我所]라고 생각하여 집착하는 마음을 내게 된다[성철; 백일법문]. 이 의식 작용은 주변의 만상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연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의식 작용은 밖의 객관적 현상들을 비교하고, 계산하고, 분별하면서 탐욕과 애착심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취하고 자신에게 해롭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싫어하는 마음을 내면서 재구성된다. 그러면서 기쁨, 슬픔, 괴로움, 죽음 그리고 번뇌를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중생의 삶과 죽음을 연결시키면서 그 과보를 받고 또한 다른 형태의 삶의 원인이 되는 윤회의 주체는 바로 意識 作用이라고 할 수 있다.

3. 삶의 주체가 되는 인간 의식의 구성은?

인간 의식의 구성을 불교에서는 8가지 식으로 나누고 있다. 즉 안이비설신의 6식과 말나식 그리고 아뢰야식이다. 이를 좀더 간략하게 표현하면 心[아뢰야식], 意[말나식], 識[안이비설신의]이라고 할 수 있고,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내부의식[심] 자아의식[말나식] 그리고 외부 의식(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외부의 객관계와 접촉하는 것은 눈. 코. 입. 귀. 몸을 통해서 이다. 이 다섯 가지의 뿌리[五根]와 이를 통해 받아들인 외부의 현상을 판단하고 분별하며 선악과 고락으로 구분하여 주는 작용을 하는 의(意)와 합하여 우리는 전 6식[외부 의식]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외부 의식의 작용을 통해 객관적인 세계를 인식하게 된다.

또 다른 심체(心體)로서 이 전6식의 바탕이 되면서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자아의식 즉 말나식이다. 이 말나식은 아뢰야식를 모체로 하여 형성된 심체로 곧 아뢰야식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모든 것을 아뢰야식에 비추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있다고 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자아에 대한 집착과 자만심들이 이 말나식이 가지는 체성(體性)으로 인해 발생한다.2) 이 말나식으로 인해 사람들은 모든 것들을 자기 중심에서 판단하고 나라고 하는 허구적 존재는 물론 객관적 세계를 바탕으로 자기 마음대로 허구적인 대상들을 만들어 낸다.3) 마지막으로 모든 윤회의 근본이 되는 종자식으로서의 아뢰야식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곡식의 종자가 남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정의 근본식이 종자가 되어서 그로부터 모든 생사가 벌어진다" 라고 하셨다. 이 아뢰야식은 무기성(無記性)을 근본으로 한다. 즉 善性에도 속하지 않고 惡性에도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6식[외부 의식]과 말나식[자아의식]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선업과 악업이 이곳에 저장된다. 즉 아뢰야식은 모든 업력을 쌓아 두는 창고와 같은 역할을 한다. 아뢰야식은 모든 인간의 행위를 통해 지은 업을 능동적으로 저장하고[能藏] 또한 모든 업은 자동적으로 아뢰야식에 저장된다[所藏]. 그리고 말나식은 이 아뢰야식을 자아라고 집착한다[執藏].

4. 삶의 주체인 식(識)의 작용을 통한 인과(因果)의 현상은 어떻게 이루 어지나?

이 아뢰야식은 그 내에 축적된 업의 속성에 따라 삼계육도를 윤회하게 된다. 그 윤회 과정에서 그 동안 아뢰야식에 축적된 업은 생명의 종자가 되어 연을 만나 다른 삶의 형태로 변화되어 나타나게 되는데 이렇게 외부로 나타난 결과를 과보라고 한다. 이렇게 아뢰야식은 완전히 다른 몸의 형태로 탈바꿈하여 나타남으로 다를 異자와 익을 熟자를 써서 이숙식이라고도 표현된다.

이 인연과보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등류습기(等流習氣)요, 다른 하나는 이숙습기(異熟習氣)다. 이 등류습기라고 함은 곧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것처럼 선업(善業)은 선과(善果)를 그리고 악업(惡業)은 악과(惡果)를 가져옴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모든 우리의 행위를 통해 지은 업은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원인에 따라 결과가 발생하는 과정은 단선적인 것이 아니라 복잡하면서도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즉 원인에 따른 결과가 엮어지는 과정에서 선업의 과보가 악과로 나타나기도 하고 악업의 과보가 선과로 나타나는 등 다양한 형태의 과보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업의 과보가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여 이를 이숙습기라고 표현한다.

그러면 왜 이러한 이숙습기 현상이 나타나는가? 일단 전생의 업이 인이 되어 연을 만나 한 행위가 형성되면 그 행위는 또 다시 업이 되어 아뢰야식에 축적된다. 이렇게 과거 업이 기초가 되어 연을 만나 형성되는 모든 행위는 또 다른 업이 되어 아뢰야식에 축적되어 간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새롭게 지속적으로 아뢰야식에 축적되어지는 업은 이미 아뢰야식에 축적된 기존 업의 특성을 변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즉 현재 우리가 짓는 업은 그 동안 아뢰야식에 축적된 기존의 업과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면서 서서히 그 속성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뢰야식은 지속적으로 그 속성을 달리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과보도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이 결과로 설사 과거에 악업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그 과보가 엉뚱하게 선과로 나타나는 이숙습기 현상이 나타난다.

5. 인연과보 현상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이러한 인연과보의 현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자성은 없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식의 작용만이 있으므로 자아가 있다고 집착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는 주어진 운명에 따라 결정된 인생의 항로를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어떠한 삶을 사느냐에 따라 우리 생명의 근본인 아뢰야식의 속성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지속적으로 공덕을 쌓게 되면 어느 순간에 우리의 아뢰야식은 그 특성이 변화하여 좋은 과보를 낳을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인격체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이요 주어진 대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적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엮어 내면서 창조해 가는 창조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 아무리 나쁜 일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인 수행 공덕을 쌓게 되면 점차 우리 삶의 근본인 아뢰야식이 변화하여 선한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어떠한 실천적인 삶을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의 업장이 아무리 두텁다고 해도 현재 지속적으로 우리의 식을 정화시키면서 공덕을 쌓아 가면 현생에 적정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우리는 분명 희망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6. 우리의 중요한 과제는?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여덟 개의 모든 식을 정화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 식을 정화시키면 우리는 네 가지 지혜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육조 스님은 여덟 가지 식을 전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여덟 식의 자성이 본래 청정한 것을 바로 깨달으면 식의 작용 그대로가 지혜라고 지적했다. 그 네 가지의 지혜는 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묘관찰지(妙觀察智), 성소작지(成所作智)이다. 즉 제 8식인 아뢰야식이 바로 청정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알 수 있는 대원경지의 지혜를 얻게 되고, 제 7식의 말나식에 미혹과 집착의 병이 없는 상태가 되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떠나 모든 것을 평등하게 대할 수 있는 평등성지의 지혜를 갖게 되고, 제 6식인 의(意)가 모든 것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일을 멈추게 되면 사물의 묘한 이치를 관찰할 수 있는 묘관찰지의 지혜를 얻게 되며 마지막으로 전 5식이 청정하게 되면 대원경지와 동일하게 되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출 수 있는 성소작지의 지혜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의 지혜를 성취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인연을 통해 이러한 우리의 8식을 정화할 수 있는 불씨가 우리의 의식 작용에 접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불씨는 바른 인연을 만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우선 바른 인연을 만날 수 있도록 우리는 공덕을 쌓으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바른 인연을 만나 불씨가 우리의 의식 작용에 접목되면, 서서히 그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수행 공덕을 통해 그 불씨를 키워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바른 깨달음을 얻어 앞에서 이야기한 네 가지의 지혜를 성취할 수 있게 된다.

佛法을 토대로 禮와 德을 배양한다.
實像觀法으로 業을 淨化한다.
下心하여 時節因緣을 收用한다.
 

 


1) 중생은 모든 생명체를 포함하는 용어이나 이 글에서는 주로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한다.

2) 말나식은 모든 것을 자아라고 하는 생각을 바탕으로 분별하여 사량식(思量識)이라고도 표현한다.

3)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유의법의 세계 또는 眞제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俗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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