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覺醒의 훈련[正精進, 正念, 正定]

 

가.왜

계행을 지킴으로써 일시적으로 자기의 말과 행동을 통제할 수는 있지만, 탐욕과 혐오감 등의 건전하지 못한 마음이 들끓고 있는 한 얼마지 않아 곧 戒를 破하고 탐욕과 증오가 폭발하여 자기,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미치게 될 것입니다. 즉 고통의 진정한 원인은 정신적인 행동에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수행자는 정신적인 차원에서 대처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覺醒의 훈련 즉 참선수행이 필요하게 됩니다.

覺醒의 훈련은 팔정도의 두번째 단계로 정신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전체적 행위로 자기 마음의 참 주인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팔정도의 세 부분인 올바른 노력(正精進), 올바른 자각(正念), 올바른 집중(正定)이 이 覺醒의 훈련에 포함됩니다.

나.어떻게

1)올바른 노력[正精進]

마음은 쉽게 무지 속에 휩싸이고 혐오와 격분에 흔들립니다. 마음을 견고하고 안정되게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하나의 대상 즉, 一心으로 집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수행자는 자신의 미묘한 성품, 마음을 검사하는 도구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부처님은 그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마음을 一心으로 向하게 하는 여러가지 수행법을 고안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내적 행동을 탐구하는 가장 좋은 기술로 좌선과 호흡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숨을 쉬어야 하기 때문에 호흡은 모든 사람들에게 손쉬운 주의 집중의 대상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명상의 대상입니다.

수행자는 가슴을 활짝 열고 등을 곧게 세우며, 턱은 약간 당긴 자세로 두 손을 무릎 위에 놓고 눈은 살짝 감습니다.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손의 모양은 法界定印, 삼지법, 양 손바닥을 자연스럽게 펴고, 등으로 변형할 수 있습니다)

길고 가늘게 날숨을 약3회 정도 쉬면서 호흡을 안정시킨 다음, 호흡이 떨어진 단전 밑의 그 자리에(날숨과 함께 낙엽이 떨어지듯 호흡이 내려앉은 그 자리) 호흡의 의식을 안착시키고 날숨만을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호흡을 계속 합니다.

이것은 호흡하는 훈련이 아니라 깨어 있음의 훈련입니다. 호흡을 자의적으로 조정하는 노력이 아니라 짧든 길든 무겁든 가볍든 거칠든 부드럽든,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호흡을 유지하면서 날숨과 함께 기혈이 뛰는 맥박의 고동을 단전으로 觀합니다.

단전으로 기혈의 맥박을 觀하면서 날숨 호흡법을 자연스럽게 유지해 나갑니다.

수행자는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곧 알게 됩니다. 날숨과 기혈의 흐름에 의식을 집중하자마자 기억, 계획, 희망, 두려움 등의 수천가지 생각들이 마음 속으로 뛰어 들어옵니다. 이것들 하나 하나에 주의를 빼앗기다 보면 수행자는 날숨과 기혈의 흐름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수행자는 새로운 결심으로 다시 시작해 보지만 곧 마음은 호흡으로부터 떨어져 있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의 끊임없는 방황을 알아챘을 때, 참을성 있게 그리고 조용하게 다시 돌아와 날숨과 기혈의 흐름에 집중하고, 실패하면 또 다시 시작하는 것이 수행자의 모습이며 역할입니다. 미소를 지으며 긴장하지 않고 실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우리는 반복하여 계속 수행을 지어 가면 됩니다. 삶의 습관이란 짧은 시간에 변화되지 않습니다. 조용히 인내심을 갖고 반복하여 계속적으로 관찰해 갈 수밖에 다른 첩경은 없습니다. 이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고 올바른 노력(正精進)입니다.

부처님은 올바른 노력을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① 삿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함
② 삿된 생각이 일어나도 무시함
③ 자비심을 개발함
④ 자비심의 발전과 완전한 성숙을 향함 (증지부. IV. Ii. 3-13)

수행자는 앉아서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기혈의 흐름에 一心으로 집중함으로써 자기에 대한 깨어있음의 상태를 유지하여야 합니다. 수행자는 나태와 혼란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만일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따라가는 대신에 다시 반복하여 기혈의 흐름으로 되돌아와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一心으로 집중시킬 수 있는 능력 즉 방해에 저항하는 능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올바른 노력(正精進)은 이렇게 실천되어 갑니다.

수행이 충분하게 진전되면 위에 언급한 모든 내용들에 대한 집착이 서서히 떨어지게 됩니다. 그것들은 단지 외적형태나 실제의 경험이 없는 공허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앉아야 비로소 정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행자는 앉은 자세에서의 훈련에서 누운 자세, 움직이면서 즉, 行住坐臥 語默動靜간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올바른 정진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2)올바른 자각[正念]

날숨과 기혈의 흐름에 대한 관찰은 올바른 수행을 하기 위한 필요 조건입니다. 우리의 고통은 무지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또 자신의 참된 성품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충동적 행동을 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의 대부분 시간들은 환상, 잡념, 반복되는 과거의 기쁘고 슬픈 경험들,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등으로 낭비되고 있습니다.
마음이 탐욕과 혐오에 빠져들면 수행자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 이 순간이 수행자에게는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 살 수 없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살 수 없습니다. 미래는 영원히 저 먼 곳에 있을 뿐,

우리는 오직 현재 여기에서만 존재합니다.

올바른 자각[正念]은 바로 여기에서의 지금 현재에 대한 정확한 자각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바로 여기에서의 현재 순간을 자각할 수 있도록 각자의 능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주의를 순간순간 자기 자신의 성품에 一心으로 집중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좌선과 호흡법의 기술을 익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수행법은 날숨을 내쉬는 순간 그리고 기혈이 흐르는 맥박의 고동소리를 감지하는 순간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능력을 배양시켜 줍니다.기혈의 흐름에 대한 관찰은 현재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가장 정확한 자각이기도 합니다.

기혈의 흐름에 대한 관찰능력의 발전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수행자는 궁극적 실재를 경험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혈의 흐름에 대한 집중은 자신이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탐구 즉 무의식 세계를 의식세계로 되돌려 주는 작업을 합니다. 기혈의 흐름은 의식과 무의식의 양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찰은 무의식의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가 됩니다.

날숨과 기혈의 흐름에 대한 관찰을 통하여 수행자는 무의식으로 활동하고 있는 몸의 자동적 기능들을 감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날숨과 기혈의 미세한 부분을 관찰하는 데까지 발전합니다. 그리하여 수행자의 관찰은 표면적 수준에서 미세한 실재의 자각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자각[正念]의 실천입니다.

3)올바른 선정[正定]

날숨과 기혈의 흐름에 대한 집중은 현재의 순간을 올바르게 인식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가능한 한 일상생활의 순간순간에 깨어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올바른 선정[正定]입니다.

날숨과 기혈의 흐름에 대한 집중이 진전되면 호흡이 안정되고 마음이 고요하게 유지되면서 여유와 행복과 충만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집중이 진전되면 一心의 대상을 호흡과 기혈의 흐름에서 모든 대상들의 본질 즉, 實像觀法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됩니다.

더욱 더 一心이 익어가고 호흡과 기혈의 흐름이 보다 정교해지면서 마음이 표면의 현상을 꿰뚫어 가장 미세한 내면의 본질로 향하게 됩니다 즉 만상의 실상을 단전으로 觀하게 됩니다.(實像觀法의 대상 선택은 수행자의 성품과 시절기운에 따라 변용하여야 하므로 지도자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단전으로 觀한다'함은 머리로 思惟함으로써 뇌 세포가 지배하고 있는 문자나 알음알이로부터 벗어나고 생체 에너지가 평정을 이루면서 수행자의 의식이 객관화됨을 의미합니다.

단전으로 실상을 觀하면서 날숨 호흡법을 자연스럽게 유지합니다.

이런 단계에서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빛을 본다든가 어떤 통찰력을 얻는다든가 특별한 소리를 듣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더 높은 수준으로 들어가기 위한 징후일 뿐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수행과정에서 기쁨, 평화, 황홀감 등을 경험하게 되지만 이러한 종류의 축복들이란 정화된 마음의 심연에서 자발적으로 나왔다기 보다는 마음의 표층에서 첨가되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로 극히 한시적인 드러남에 불과하며 그 황홀상태는 수행자에게 자유를 주지 못합니다. 또한 수행의 목표가 정신적 황홀이나 흥분의 경험에 있는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行住坐臥 語默動靜간에 지속적으로 수행자 자신의 性品을 관찰하고, 고통의 원인이 되는 조건들을 제거하기 위한 마음의 도구 그것을 끊임없이 만들어 나가는데 올바른 선정[正定]의 본 뜻이 있습니다.

다.마음을 어디로 向할까?

수행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뇌망상을 수행의 씨앗으로 활용하여야 합니다, '이 혼돈된 마음을 꼭 부수고 말겠다는 마음'이 분심으로 이어지고 '그 분한 마음을 일으키는 이 놈이 무엇일까?'하는 의심으로 발전하고 이 수행법은 하면 한만큼 될 수밖에 없는 수승한 자연법으로 부처님과 역대조사들이 증명하였다는 확신 즉 신심으로 똘똘 뭉쳐져야 합니다.

내면세계의 대폭발은 확신에 찬 부정관이 있어야 집착에서 멀어지고 홀연히 대긍정이 심겨지는 시절인연이 도래하게 됩니다.

의식을 고요히 하고 몸 속의 기운을 원활하게 정화하여 당당한 뱃심을 증장시켜 마음과 육체가 둘 아님을 깨우쳐 가야 합니다.

잔잔한 호수에 보름달이 비치듯 마음의 호수를 맑히고 정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의식이 객관화된 것은 마음이 평정된 것과 같아 만물의 이치를 직관할 수 있는 지혜가 일어나며 언어의 裏面인 行의 이치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들숨과 날숨간에 일어나는 각종 생각 에너지들을 몸 구석구석에 분산시킬 수 있으므로 심신이 자유스러워 집니다.

믿음과 확신이 더불어 더해지면서 자신의 에너지를 스스로 회전시킬 수 있는 단계가 되어 육근을 토대로 한 정신 에너지가 점진적으로 맑아지게 됩니다.

기운은 봄날처럼 온화하고 만화하여 있는데 그것을 어디로 회향할까요?

라.오늘의 Key Word

大疑心, 大憤心, 大信心으로 迷惑에서 벗어난다.

實像觀法을 통하여 業[固定觀念]을 정화한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