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경책문

 

8. 경책

1) 얻으려고 하지마라

수행자가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얻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앞에서 수행을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닦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성은 밝게 빛나고 있으며 진실은 이미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닦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수행은 얻는 것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에 속하는 것이다. 무엇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한 이미 수행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린다. 비우고 버리는 속에서 문득 본성광명이 그대로 밝게 비추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달마혈맥론>에 "부처를 지니고 부처에게 절하지 말며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염하지 말라. 부처는 경을 읽지도 않으며, 부처는 계를 가지지도 않으며, 부처는 계를 범하지도 않으며, 부처는 지킴도 범함도 없으며, 선과 악을 짓지도 않는다. 만일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곧 부처일 것이다. 성품을 보지 못하고 염불을 하거나 경을 읽거나 재계를 지키거나 계를 지킨다면 아무런 이익이 없다. 염불은 왕생의 인과를 얻고, 경을 읽으면 총명해지며, 계를 지키면 하늘에 태어나고 보시를 하면 복스런 과보를 받겠지만 부처는 끝내 찾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수행을 하면서 이것을 한다는 생각이 붙으면 안된다. 그러면 곧 나는 수행한다는 상을 갖게 되고 너는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붙어 교만해지기 쉽다. 또한 모든 것으로부터 해탈하고자 하는 것이 수행의 목적인데 다시 수행에 묶여 버리는 어리석음을 짓게 된다. 성품의 참 모습은 본래 나와 너도 없고, 오고 감도 없으며, 늘어남과 줄어듦도 없으니, 먼저 성품을 보지 않고서는 무언가 얻으려는 생각, 쌓아 간다는 생각을 여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품을 보지 못한 수행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아서 결코 도에 이를 수 없다. 어디에도 걸림없는 참 성품을 보아야 무위의 행이 가능한 것이다. 그 전에는 모든 노력이 다 유위를 벗어나지 못하니 유위로서는 생사를 벗어날 수 없다. 대나무 그림자가 마당을 쓸어도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것처럼 하라.

2) 나무가 저절로 자라게 하라

만물은 스스로 되어 돌아가는 것이기에 할 일을 다 했다면 그 결과는 자연의 힘 즉,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업력에 맡겨도 된다. 지혜의 결실이 빨리 오든 늦게 오든 그것을 억지로 할 수는 없다. 마치 자기가 심은 나무라 해서 그 성장을 마음대로 강요할 수 없지만 그러나 노력은 계속 기울여야 한다.
앞에서 수행은 자성을 찾고 거기에 의지해 하는 수행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즉, 수행한다는 상을 가지면 자성을 등지기 때문에 한다는 생각을 붙이지 말고 자연스럽게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한다는 생각없이 한다면 당연히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행자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경계 중의 하나가 나는 언제나 깨달을 수 있는가? 하고 기다리고 재촉하는 것이다. 이렇게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지혜는 멀어진다. 부처님의 말씀을 아는대로 진실하게 실천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인과가 여실하거늘 수행의 공덕이 어찌 없겠는가. 밤나무 열매가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듯이 여법하게 수행을 지어 나가다 보면 결실이 있을 것이다. 결코 결과를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곁눈질하지 말고 오직 자신 스스로에 맞게 해 나갈 것이지, 결코 다른 사람을 흉내내지 말아야 한다. 누가 좀 나아 보이면 어떻게 했나하고 궁금해져 묻고 이것저것 흉내 내다보면 씨만 뿌리고 거두지 않는 농부처럼 결실은 얻을 수 없다. 수행할 때는 억지로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힘닿는 대로 상없이 할 것이요, 하고 나서는 그 결과 무엇을 얻기를 바라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거부하거나 붙들지 않는다

수행자는 인간의 모든 길흉화복은 자신의 업에 따라 이루어지며 선악의 과보가 분명함을 믿는다. 세상의 어지러움 중 많은 부분은 인과를 모르고 인과를 믿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세상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인과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인과를 믿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이것은 모두 내가 뿌린 씨앗이니 내가 거두어 들인다'는 마음이 생기므로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으며, 피하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자포자기는 더욱 아니다. 오직 괴로움에 직면하여 그것을 뛰어넘는다. 반대로 일이 잘 풀리고 지위가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교만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두 과거의 공덕이니 공덕이 다하면 이러한 것은 모두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쉬지 않고 공덕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항상 겸손해야 한다.

수행을 하면 할수록 인과가 분명함을 본다. 이렇게 수행하면서 체득된 인과에 대한 믿음은 처음의 기복적 신앙에서 탈피하여 인과의 근원으로써 연기를 알게 한다. 따라서 어떤 현상이 다가와도 결코 거부하거나 붙들지 않는다. 부처님은 고통의 원인이 집착에 있다고 했다. 이 말은 무지 또는 욕망에 있다는 말과 같다. 모든 일어난 것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것은 내가 아니고 네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의 바램과 상관없이 인연에 의해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이다. 거부한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붙들려고 해서 붙잡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라볼 뿐이다.

특히 거부하거나 붙잡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때가 바로 참선 중에 나타난 현상들을 대할 때이다. 좌선 중에는 현재의식에서 나타나지 않던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난다. 때로는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거나,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거나, 빛이나 영상을 보거나 어떤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낄 수도 있고 기쁨, 고요, 환희를 느낄 수도 있다. 또는 어떤 신비한 능력이 생기기도 한다. 상대방의 마음이 읽어진다거나 전생을 본다거나 하는 등이다. 그밖에도 크고 작은 다양한 현상들이 왔다 간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 주착하지 말아야 한다. 좌선 중에 일어나는 모든 경계는 지나가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이런 것들에 마음 쓰지 말고 본래 해오던 수행법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특히 신비한 현상이나 능력이 생기면 그것에 홀리거나 쫓아가기 쉽다. 얻으려 하지 말라는 첫 번째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고 신비한 능력을 얻고자 하였다면 여지없이 여기에 걸려 지혜는 고사하고 삿된 길에 빠져들어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어떤 것이 오더라도 거부하거나 붙잡지 말고 하나의 현상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부처가 오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가 오면 조사를 죽이라는 임제선사(臨濟禪師)의 살불살조(殺佛殺祖)처럼 수행자는 그 어떤 경계현상에도 묶이지 않는 놓고 비우고 버리는 것을 참선공부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선지식 인연을 지어 경계점검과 인도를 받아야 하며 궁극에는 호흡을 망각하듯 깨달음조차도 놓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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