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스스로를 변화시켜라
3. 스스로를 변화시켜라
수행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를 변화시켜야 한다. 자기가 변화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을 안다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자기는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권한다 한들 누가 그 말을 믿고 따르겠는가? 그러므로 먼저 자기를 이롭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가? 마음이다. 탐욕으로 물들고 성냄으로 물들고 어리석음으로 물들어 있는 마음을 본래의 청정심으로 회복해야 한다.
따라서 수행하는 사람은 더 이상 끝없는 욕망의 굴레에서 괴로워하지 말고 욕망과 불행의 실체를 똑똑히 인식하고 소욕(小慾)과 지족(知足)의 생활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삼보에 의지하는 것 말고 달리 믿고 의지할 만한 것이 있겠는가.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변하기 쉬운 존재이며 항상하거나 영원한 것은 없다. 그렇다고 염세주의자가 되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허송세월을 보내라는 것은 아니다. 허무주의자가 되어 세상을 등지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욕망의 뿌리를 알고 고통의 근원을 알아서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해탈의 삶을 살아보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바른 목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아닌지 헛된 욕망에 기초한 것은 아닌지를 살펴, 마음을 비우고 세상의 이익과 내면의 충만을 향한 목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 좋은 목표란 그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도 좋은 것이니 결과에 대해서는 연연할 필요가 없다. 바른 목표와 최선을 다한 노력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삶을 산다면 범부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건데 욕망과 잘못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그렇게 함으로써 삶은 행복과 기쁨으로 넘치며 활기와 밝음이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러한 삶을 위하여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수행자의 첫 번째 자세로서 가치관의 변화, 사고 방식의 전환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의 전환을 가져온 뒤에는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자기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성격개조, 습관 고치기 등이 자기변화의 실제적인 내용이 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사상(四相)에 의해 여러 가지 습관인 훈습이 몸과 마음에 베어있다. 그리고 그 습관대로 아무런 반성없이 살아간다. 모난 성격, 화를 잘 내는 성격, 급한 성격, 이기적인 성격 등은 원만한 대인관계를 해치게 되고, 보람있고 행복한 삶을 향한 인류의 보편적 희망을 등진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먼저 자기를 변화시키고자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제나 자신에 대해 잘 살피고 있어야 한다. 잘 알지 못할 때는 우리의 관심은 늘 밖을 향하여 치달려 갔다. 이제는 안으로 돌려 자신을 살피고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수행자의 첫 번째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4. 항상 도를 생각한다
언제나 보리심[菩提心]을 잃지 말고 무엇을 하던 어디에 있던 생각을 거기에 두는 것이다. 이를테면 용무를 보면서 비우고 버리는 공덕을 생각하며 이같이 언제나 비우고 버릴 것을 바라고, 세수를 할 때에는 번뇌의 때도 이같이 씻어지기를 바라며, 반듯한 길을 갈 때에는 중생들이 마음이 곧고 발라 몸과 입에 조금도 굽음이 없으면 하고 바라고, 험한 길을 갈 때에는 중생들이 나쁜 길을 모두 버리고 그릇된 소견을 다 없앴으면 하고 바란다. <화엄경 정행품>에서는 언제나 도를 생각함에 각각의 때와 장소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잘 제시되어 있다. 이와 같이 언제 어디서나 선행을 생각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5. 사람 몸 받기 어렵다
<비유경>에 이르기를 "한 비구가 있었는데 다만 배부르게 먹고 방안에서 문을 걸고 몸의 편안함을 즐기며 잠만 자다가 그 뒤 7일 후에는 목숨이 마치려 하매 부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그 비구에게 나아가 말씀하셨다. 돌아보니 그대는 유위불 때에 일찍이 출가는 하였으나 경계(經戒)는 염하지 않고 다만 배부르게 먹고 잠자기만 일삼더니 그 뒤 목숨이 마치매 혼신이 지네가 되어 5만세를 지났고, 목숨이 다하여서는 다시 물 속의 고동, 조개와 나뭇 속의 좀벌레 등이 되면서 각각 5만세 동안씩을 지났었다. 이 네 종류의 벌레들은 어둠 속에 살면서 몸을 탐하고 즐거운 곳만 찾아 애착하나니, 오직 어두운 곳으로만 즐겨 찾아 집을 삼는지라 밝은 곳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한 번 잠들면 백세가 되어야 겨우 한 번 잠을 깬다. 그래서 죄의 그물에 얽매여 있어도 벗어남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대는 이제야 비로소 죄업을 다 마치고 겨우 사람 몸을 받아 사문이 되었거늘 어찌 다시 잠만 자며 싫어할 줄 모르는가" 그 말씀을 들은 비구는 부끄럽고 두려워 스스로를 꾸짖으매 그로 해서 오계가 곧 제거되고 드디어 아라한과를 이룬 것이다 하였다.<만선동귀집>
이렇듯 사람 몸 받기 어려우니 부디 사람 몸 받았을 때 수행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번 생에는 이 정도만 하고 다음 생에 성불할 수 있게 공덕이나 쌓자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려우니 어떻게 다음 생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번 생에 깨달아서 해탈하지 않으면 윤회로부터 벗어날 길은 요원한 것이다. 또한 이번 생에 반드시 부처가 되겠다는 자세로 수행에 임할 때 다가오는 무수한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6. 소욕(小慾)과 지족(知足)
심신 수행은 실제적 생활이고 인생이다. 실생활에서 더
평화롭고 더 자유롭고 더 자비롭고 더 기쁘게 산다면 그것은 수행을 성실히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절제와 만족의 생활이 필요하다. 욕망은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음을 알고 욕망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참 삶을 살아보자. <유교경>에서
부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하는 것이 많은 까닭으로 고뇌도 많거니와 욕심이
적은 사람은 구하고자 함이 없어 근심 걱정이 없음을 알아야 된다. 오로지 소욕(小慾)하기
위해서도 오히려 마땅히 닦아야 하거늘 하물며 소욕이 모든 공덕을 낳게 함에 있어
서랴. 욕심이 적은 사람은 아첨으로서 남의 마음을 사려고 하지 않고, 모든 감관에
이끌리지 않는다.
소욕을 행하는 사람은 마음이 평안하여 아무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고, 하는 일에 여유가 있어 언제나 모자람이 없다. 이렇게 욕심이 적은 사람은 일찍 열반 경지에 들게 되는데 이것을 소욕(小慾: 욕심이 적음)이라 한다.
수행자들이여 만약 모든 고뇌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마땅히 [만족할 줄 아는]것에 대하여 관찰해 보라. 만족함을 아는 법은 부유하고 즐거우며 안온한 곳이다. 넉넉히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맨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오히려 편안하고 즐겁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록 천당에 있을지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자는 비록 부유한 듯 하나 가난하거니와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가난한 듯 하나 부유하다. 만족을 모르는 자는 항상 오욕에 이끌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불쌍하게 여기는 바가 된다. 이것을 지족(知足: 만족할 줄 앎)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