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예요.’

‘어디, 어디요?’

저기라고 가리킨 곳에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만 보일 뿐.
가까이 가서 누가 여기라고 말해주는 순간에도 두리번거리며 거기를 찾았다.
사방천지가 다 뚫려 어디 하나 가려주고 보호해 줄 것 없는 훤한 평지, 바로 옆에는 밭이 있고 아스팔트 길 건너편에 논이 있는 곳. 벌겋게 녹슨 철판 가운데 놓인 짙은 회색빛 매끄러운 차돌바위와 바위에 비해서는 크기가 좀 작지 않나 싶은 글씨.

‘대통령 노무현’

거기는 고 노무현대통령의 무덤이었다.
우리 일행은 차례가 되어 자그마한 비닐 돗자리에서 절을 하며 참배하였다.
절을 하면서도 솔직히 나는 고인에 대한 추모보다는 머릿속에 가득 든 혼란스러움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참배를 마치고 난 뒤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다 발견한 검은 칠을 한 철판가리개. 무슨 공사라도 하는 중이라 가려 놓은 것이려니 했더니 ‘병풍’의 의미로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저 시커먼 철판이 병풍이라고?... 사이를 좀 두고 보아도 그 검은 철판병풍(?)은 두께도 상당했다.

무덤 옆에서 추모객을 맞이하는 사람이 비석 가의 철판은 지금은 녹이 슨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질 거라며 우리나라의 유명한 박사와 전문가들이 모여 연구해서 만든 것이니 아무 문제없을 것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무덤의 모습에 대해 물어보는 참배객이 많은지 설명해 주는 그 사람 주위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계속 뭔가를 물어보고 있었고 참배객들의 이어지는 질문이 처음이 아닌 듯 우리가 무엇을 궁금해 하고 물어볼 것이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처럼 그는 우리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하였다.

적어도 그 때 고인의 무덤에 참배를 한 사람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듯 얼굴 표정도 고인의 장례식 때 보았던 추모의 마음이나 영가를 편안하게 보내려는 차분함이 아니라 혼란스럽고 멍한 표정이었다.

무덤과 쇠판, 그리고 쇠병풍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물론 나는 무덤을 쓰는 것은 매우 신중하고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은 알지만 자세한 것은 잘 모른다. 하지만 사실 이런 무덤은 처음 보았다. 참배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무덤이 보이는 근처의 잔디에 앉았다.

우곡선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들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의 무덤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무덤과 쇠는 상극이다. 따뜻하고 온화함 속에서 체백이 산화되어야 하는데 쇠는 찬 성질을 가진 것이라 예부터 무덤 근처에는 절대 쇠를 가까이 두지 않았다. 그래서 관에 치는 못도 나무못을 썼다. 저 자리는 저 위에서부터 흐르는 개울이 지나는 자리다. 그리고 먼 걸음을 달려와 추모를 하러 온 국민들이 비록 고인의 죽음은 가슴 아프고 애닯지만 무덤이라도 반듯하고 좋은 모습이라면 마음에 위로를 하고 돌아갈텐데, 내일부터 당장 가정이나 직장에서 각자 맡은 일을 해야 하는데 저런 모습을 보고는 어떻게 좋은 결과가 나고 과연 국운이 밝아질 수 있겠느냐? ‘

주위를 둘러보니 추모객이 많았다. 49재도 끝났는데 아직 이렇게 추모의 마음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면서도 놀라웠다. 고인의 비석 앞에는 이미 장미와 국화가 수북히 놓여져 있었다. 그들이 놓고 간 꽃들은 참 가지런이 정돈되어 놓여있는데...,,

나와 같아 보였던 참배객들의 혼란스러움은 아마 참담함과 죄스러움이었으리라. 못 배우고 가지지 못한 우리 같은 백성을 위해 스스로 고난인줄 알면서도 그 길을 가신 고인께서 그런 극단적인 모습으로 가실 때까지 아무런 힘이 되어드리지 못했고 그 죄송함에 더욱 지극한 추모의 마음으로 고인의 편안한 영면을 발원하였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하여 아직 편안하게 고인을 보내드리지 못하는 무거움이 아니었을까? 무덤을 만든 사람들의 뜻이야 어떻든 고인의 입장에서는 저 먼 길을 수고하며 일부러 자신의 무덤을 찾아온 참배객들이 이렇듯 당혹스러운 마음을 안고 돌아가는 것쯤은 괜찮았을까? 참배객들의 마음은 상관하지 않았을까?

나는 고인이 생전에 전위예술가나 예술 쪽의 일을 하신 분이었다면 이런 모습의 무덤이 고인의 생전의 삶과 의미를 같이하여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다. 하지만 생전에 살았던 삶의 모습이 어떠했던 몸을 가지고 태어난 생명이라면 그 육신은 보슬보슬하게 고운 흙으로 다시 돌아가야 함은 누구나 똑같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을 담은 육신은 무릇 모두 다 지수화풍의 인연화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무덤을 쓸 때 사철 햇빛이 잘 들고, 땅을 팠을 때 물(水)기가 없고 ... 그런 여러 가지 조건을 신중하게 보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별다른 모습을 한 무덤보다는 삶의 마지막 마무리가 죽음임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듯이 순리를 따라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생전의 삶의 모습이 어떠했던 우리 모두는 똑같은 인간이고 나고(生) 죽음의 큰 틀은 똑같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인은 정직하고 결백한 삶을 살면서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셨던 분이고 대통령 임기를 마친 후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소박한 삶을 살다가 다시 자신의 결백을 온 몸을 던져 증거하고 항거한 분이시다.

그 날 이후 나는 그 짙은 회색 차돌바위 비석 위에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던 고인의 모습, 조사를 받고 검찰청을 나오던 고인을 향해 터지는 카메라를 바라보던 고인의 눈빛이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겹쳐지면서 내내 착찹하고 먹먹했다. 사회의 약자 편에 서서 온 몸을 바쳤고 귀향하여 농사를 지으며 진정한 민주시민으로 살고 싶었던 전직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고, 그 무덤조차도 이런 모양새라면 그 누가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그들의 편에 서는 용기를 펼치며 살려고 할까? 정직하고 소신껏 힘없는 백성을 위해 온 몸을 던져 그들의 입장을 대변(代辯)해 주는 의로운 사람이 이 땅에 또 나타날까? 이 나라의 많은 힘없는 백성 중의 하나인 나는 왠지 불안하고 온 몸의 기운이‘쭉’빠졌다.

먹먹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막막해지면서 자꾸자꾸 답답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