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1박2일
이름 : 공덕행 작성일 : 2009-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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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직장동료들과 함께 였다.

아침 7시5분 발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집 근처에서 5시 20분에 출발하는 공항리무진버스를
탔다. 가끔 지나 다니는 그 버스를 보면서 ‘공항 갈 때는 저 버스를 타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타 보니 좌석 사이사이가 넓고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도 넉넉해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차 안에
보내는 시간이 안락하고 편안하다. 공항에 내려 방학 동안 못 본 동료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우리를 목적지까지 실어다 줄 비행기에 올랐다. 볼 때마다 웃는 얼굴로 대하는 아리따운 승무원
의 인사에 웃음으로 답하고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조금 후 굉음과 함께 날아오르는 비행기는 갓
내민 엷은 햇살 속을 뚫고 단숨에 하늘 속으로 뛰어 올랐다. 인사를 하는 기장이 여성임이 신선하
고 말씨에서 묻어나는 당당함과 가지런함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거의 500여
석 쯤 될듯하게 큰 비행기였는데 비행기 좌석이 거의 만원이었다.

한국관광객이 대다수 였지만 중국어를 쓰는 관광객도 많이 눈에 띄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홍콩
사람이었다. 기내에서 주는 따뜻한 커피를 감미로운 향기와 함께 마시니 어느 새 제주도가 눈 아
래에 있었다.

제주도에 온 것은 기억으로 4번째 쯤 되고 겨울에 온 것만 3번째인데 오늘은 정말 봄날처럼 따뜻
하다. 제주도는 아열대성기후로 그 곳에서는 자라는 식물도 이 곳 육지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아열
대 식물이고 본토와는 여러 가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지식으로 알았었는데 그 때는 2번 모두 추워
서 아주 혼이 났더랬다. 특히 한 번은 2월에 한라산 등반을 했는데 눈발이 너무 심해 결국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정상 바로 아래에서 하산한 적이 있었다. 정말 단 한 걸음 더 내디디는 것도 힘들
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몹시 바람이 불고 추웠었다. 그래서 제주도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우
선 매섭던 눈보라와 함께‘춥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나는 곳이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이 여행에 갈 계획은 없었는데 나중에 동료선생님의 권유로 참여하게 되었
다. 그렇게 된 데에는 작은 사연이 있다.
벌써 작년이 된 2008년 여름방학이었다. 교감연수를 받는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최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용인즉 연수중 시험에 참고할 책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그 시험과목은 내가 학교
에서 맡고 있는 업무라 관련공문이나 참고책자들이 내 이름으로 오고 내가 보관해야 하므로 그 책
자들이 있는 위치를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선생님은 나의 집과 학교 간의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그날 학교관리당번
선생님에게 부탁을 하라고 했지만 마침 그 날 관리당번 교사는 나이가 나보다 몇 살이나 위 이여서
선뜻 부탁드리기가 미안했고 그 책이 있는 위치도 사실은 나도 애매해서 직접 가서 찾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날은 내가 한가했다. 한가하다는 것은 곧 휴식이니 한가하다해도 방학 중에
학교 나오기는 좀 성가스럽기는 하다. 둘째아이를 낳고 두 달간의 산후휴가 후 휴직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툭툭 털고 근무했던 나는 그 때 말고는 학교 가기가 귀찮거나 성가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그럴 일도 없으니 이왕이면 다양한 여러 종류의 관련책자를 찾고 여러 책자에 공통
으로 나오는 내용은 시험에 나올 확률이 높겠다 싶어 나중에 찾기 쉽게 표시를 해 두었다.

그런데 다음날 내가 표시해둔 그 곳에서 문제가 나왔다면서 덕분에 답을 잘 쓸 수 있었다며 고맙
다는 문자가 휴대폰으로 왔다. 나는 도움이 되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고 그 마음을 휴대폰에 문자
로 적어 보낸 후 그 일은 잊었다.

개학을 하고 며칠 뒤 회식자리에서 최선생님은 내 손을 잡으며 정말 고마웠다고 몇 번이나 말했
다. 1시간 가량 차를 타고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 해 준 것이 너무 고마워서 연수 함께 받는 친구들
에게 자랑을 했다면서 그날 회식 자리에 온 교장, 교감선생님과 학교의 온 직원들에게 얘기를 하
며 고맙다고 했다. 사실 별일도 아니었고 정말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내가 오히려 더 미안할 정
도였다.

그 후 최선생님은 나를 도와주고 싶어 했다. 특히 대인관계에서 늘 뒤에 숨어있는 나를 자꾸 끄집
어내려 했다.
 ‘ 김 선생, 사람이 나이가 그 쯤 되면 자기를 드러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남에게 아쉬운 부탁도
할 수 있어야 하고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세요.’

‘예’라고 대답은 했지만‘정보가 어두워 몰랐겠다.’싶은 것은 귀뜀을 해 주면서 다른 선생님들에게
도‘김 선생도 내년에 보직교사 신청할 것이다’는 말도 했다며 옆반 선생님이 나에게 전해 주었다.
‘연수 때 도움이 크긴 큰 모양이다’는 나를 향한 말도 덧붙이며...

그러나 그 말을 전하는 동료교사의 말투 어디에도 질투나 비아냥거림은 없었다. 그들은 그냥 작
은 도움을 도움으로 갚으려는 소박한 인간관계로만 여길 뿐인 듯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가 무
리하게 누구를 밟거나 조직의 질서를 어지럽히면서까지 내 이익을 취하려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뭐 그 정도 쯤의 도움으로는 내가 자기의 자리를 넘보거
나 위협할 정도는 못 된다‘는 뒤처진 거북이를 보는 토끼의 여유 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겨울방학 중에 최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주도 여행 같이 가자고...
동료들과 어울리는 여행에 빠지지 말고, 그리고 이런 권유는 아무에게나 쉽게 하지 않는다는 말
과 함께...

무디고 둔하지만 나도 그 정도는 안다. 그래서 쾌히 가겠다고 얘기하고 명절연휴 바로 다음 날 일
행 13명에 마지막 순번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제주도의 첫날은 참 봄날처럼 따뜻하고 무척 맑았다. 그래서 해안도로를 따라 도는 데 어느 곳에
서도 한라산의 모습이 정상까지 뚜렷하게 보였다. 우리를 안내하던 기사도 한라산이 다 보이는 것
은 1년에 며칠 되지 않는다고 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한라산은 언
뜻 머리를 풀고 두 손을 가지런히 얹고 누워있는 사람의 모습과 흡사했다. 해발 1950m, 원래 한라
산 등반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2시간 정도로는 너무 겉만 핥는 것이라 별 의미가 없다는 등반 경험
이 있는 동료들의 의견에 따라 일정을 바꾸었다. 나도 한라산 등반은 꼭 같이 하고 싶은 분들이 계
셔서 남겨두고 싶었고 멀지않은 날 다시 찾아올 거라고 기약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제주도의 풍경
을 눈에 담았다.

검은 돌로 만든 야트막한 돌담과 낮은 집이 인상적이었지만 관광 특별자치도 답게 제주도는 여러
가지 테마공원과 박물관이 많이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우선 선지해장국으로 아침을 먹
고 전세버스를 타고 너무나도 유명한 용두암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관광에 나섰다. 사실은 기울기
가 낮은 데 착시현상으로 보기에는 올라가야 하게 보이는 도로에서 차의 기어를 중립에 두면 뒤
로 가야 하는데 오히려 기울기가 높은 앞으로 차가 가는 신비의 도로를 지나 칼로 썰어놓은 것 같
은 육각형의 검은 현무암 기둥에 새파란 바닷물이 부딪혀 부서지는 아름다운 구상절리, 아열대 식
물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한림공원, 바람은 강하지만 다양한 푸른빛을 띠는 제주도 바다가 한 눈
에 들어오는 외돌개 등을 관광하고 고등어조림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는 숙소로 가서 잠을 청
하며 하루 일정을 마감하였다.

둘쨋날은 바람 많다고 소문난 섬답게 바람이 세게 불면서 비가 왔다. 오늘 일정의 시작은 우도였
다. 우도는 소(牛) 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15분정도 가야한다.
한라산 등반을 위해 준비한 아이젠, 스패치, 방한모자, 마스크 등이 비바람에는 소용이 없었다. 심
한 바람에는 그나마 우산도 날리고 뒤집어지니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바람 때문에 배가 많이 흔
들려서 배를 타는 시간은 짧았지만 멀미가 났다. 그러나 기축년이 소해이고 소해의 음력 새해에
소띠가 소섬에 왔으니 잘 맞아 떨어지게 좋은 일이라며 혼자 좋아했다.
 
우도에는 관광코스로 우도팔경이 있는데 우리는 그중 섭지코지, 산호사해수욕장, 유채꽃밭을 갔
다. 섭지코지에는 몇 년전에 찍었던 드라마 올인의 세트장이 있었다. 섭지코지는 제주도에 많은
기생화산 중의 하나로 ‘좁고 길게 튀어 나온 곶’이란 뜻이다. 산호사해수욕장은 산호모래가 있는
작은 해변으로 산호가 작은 조각으로 부수어져서 마치 모래처럼 쌓여 있어 물빛이 옥가루를 섞어
놓은 듯 유럽 어디의 잘 꾸며진 리조트 광고 사진에 나오는 것 같은 에메랄드색이었다. 파도가 일
렁일 때 산호모래가 같이 일렁이니 가까이서 보면 옥물에 밀가루 한 줌 풀어 휘저여 놓은 듯 물색
이 뿌옇게 변하기도 했다.

그 옆에는 겨울 제주도를 화려한 5월의 여왕으로 변모시키는 유채꽃이 차가운 날씨에도 성성하게
피어있는 유채꽃밭이 있었다. 관광객들을 위해 사진 찍는 용도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우도는 섬답게 미역과 톳이 유명하고 특히 땅콩이 유명하다고 한다. 땅콩의 크기가 우리가 흔히
먹는 그것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고 모양도 타원형이 아니라 둥글다. 그런데 맛은 더 고소하고 껍
질째 먹어도 씹는 맛도 더 연하다.

다시 배를 타고 우도를 나와 점심으로 갈치조림을 먹고 곧바로 평화공원으로 갔다. 여기는 제주도
의 역사와 유명인들의 실물과 꼭 닮은 밀랍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역대 대통령, 유명 배우, 음
악가, 운동선수, 등 실물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는데 각자 마음이 가는 밀랍인형들과 함께 사
진도 찍었다. 출구에 여행의 피로에 지쳐 다리를 쭉 뻗은 체 앉아 졸고 있는 남자인형이 있었다.
불룩한 배도 들어갔다나왔다 하며 코고는 소리까지 너무나 감쪽같아 그 기발함이 신기하면서 재
미있었다.

계획했던 일정에 여유가 있어서 약천사라는 절에 잠시 들리기로 했다.
절의 입구부터 절 앞마당까지 어른 주먹만큼 큰 노란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나무가 빼곡이
심어져 있었다. 색깔과 크기가 자몽 비슷한 것이 보기만 해도 매우 먹음직스러운데 가지가 찢어
질 듯해도 손댄 흔적 없이 그대로 붙어있는 것은 사찰소유라 그러려니 했는데 가다가 만난 보살님
께 물어보니 귤은 귤인데 하귤이라 지금은 못 먹고 5월이나 되어야 따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삼배
를 하러 신발을 벗고 대웅전에 들어서니 입구에서 기도접수를 받는 보살이 공양미를 사서 올리고
절을 하라면서 부처님이 세 분이시니 3봉지에 공양미 값은 1만원이라고 했다.
‘복전함이 있는데 ...’

공양미를 올리고 많이 어려울 거라는 올 한 해를 모두 무사히 잘 넘기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발원
하며 삼배를 올리고 나왔다. 절을 나오며 삼배를 했던 선생님들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는지 나라경
제가 어려우니 이렇게 큰 절도 불사가 잘 되지 않거라며 이 정도의 절을 유지하려면 유지비가 많
이 들 것이라는 말로 조심스럽게 심정을 드러내었다. 약천사의 대적광전은 단일법당으로는
동양최대라는 규모에 걸맞게 화려한 단청과 삼층으로 높이 올린 법당으로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눈길은 끌겠지만 그 모습에 끌려 법당 안을 들어 선 사람들은 아마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절(排)은 하지만 보시는 잊어버린 어설픈 불자가 많은 시절이라 절(寺)을 운영하는 기본적인 경비조
달이 어려워 할 수없이 고육지책으로 그럴 수도 있고, 보시라는 불가의 오랜 전통과 도리(道理)를
알게 하려는 자비심의 발현일수도 있지만 비록 지금만큼 화려하고 웅장하지는 않아도 오가는 누
구나 들어와서 삼배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쉬어 가게 하는 법당이라면 거기서 쉬어간 많은 인연들
의 감사한 마음이 전해지고 모아져 진정한 불국토를 이루게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자들이야
어떻게라도 이해하겠지만 불교를 모르는 사람이 정초라고 무심코 좋은 마음으로 올린 삼배는 그
가 값진 불연을 만나는 시작이 될 수도 있을텐데, 기도와 공양미에 걸려 놓치게 된다면 얼마나 억
울할까 싶어 늦가을에 갔던 지리산천왕봉 만행 가던 길에 가까운 절에서 나온 사람들이 도로를 가
로 막고 도로세를 내놓으라며 막무가내로 우기던 그 일이 함께 겹쳐지면서 씁쓸한 안타까움으로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에는 드라마 ‘태왕사신기’촬영장에 갔다. 제주도에는 이런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가 곳곳에 있
었다. 설명에 의하면 이 세트장를 짓는데 20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매우 세밀하게 만들어
져 있었다. 기둥은 아름드리 통나무를 그대로 다듬어 썼고, 너와지붕의 너와도 실제 나무를 베어
다 짠 것이었다. 엄격한 고증을 거쳤겠지만 21세기 사람의 눈에는 특이한 예술품으로 보이는 여
러 소품들이  특별한 문양과 형태로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마치 고구려 시대 어느 한 부
락을 통째로 재현해 놓은 박물관을 보는 듯 내내 흥미로웠다. 우리 일행 옆에는 한 무리의 일본 아
줌마 관광객들이 있었다. 솔직히 난 이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문화의 수출은 물질적 이익뿐
아니라 반사적으로도 참 많은 부가가치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한류열풍은 아시아의 젊은이들에게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한국말을 배우게 하였고 일본
아줌마들의 명절 휴가를 제주도에서 보내게 하였으며 그중의 열성팬 누구는 뒤늦게 참 생소하기
이를 때 없는 고구려라는 나라의 건국신화를 비롯한 역사공부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문득
‘이 세트장을 짓는데 든 비용의 반만으로도 지구촌 나와 이웃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꾸미고 그들을
행복한 일상으로 안내할 토대를 지을 수 있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잃어버린 정신세계를
다시 일으킬 분이 태어나신 곳이니 한류라는 문화의 기류도 생기는 것이리라.

제주도 1박2일이 나에게는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았다는 것보다 직장동료들과 직장을 떠나서도
허물없이 얘기하고 웃고 떠들면서 함께 어울렸다는 것이 더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 안에 누구를 들이지 못하고, 누구에게 선뜻 다가가지도 못했던 그동안의 내 상처가 얼만큼 치
유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조심스런 실험여행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난 동료들과
즐겁게 어울려 얘기와 웃음을 나누며 하루 동안의 햇살과 비와 이틀의 바람을 함께 먹고 마셨다.
가볍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고 ‘인간관계는 책임과 의무이다.’는 등식을 스스로 마음에 낙인처
럼 찍어 놓고 온 몸에 묶고 휘감아서 꼼짝도 못하고 몸부림쳤던 악몽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음
을 스스로 비추어 본 시간이었다. 물론 아직도 감겨있는 사슬이 많다는 것은 알지만 가끔은 풀린
만큼 편안한 자리가 보일 때도 있다.

올해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꼭 들어 맞는 정교한 사람이 되려한다. 그래서 지난 시간은 놓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걸고 진한 거름이었음을 스스로에게 일러주고 싶다.‘존재가 드
러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꿈도 희망도 뭣도 아닌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 망상과 마치 우스꽝
스럽고도 슬픈 광대 같은 짓거리는 그만 하고 이제부터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삶을 살려 한다.
그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잘 할 수 있는 정교한 사람으로 나를 조금씩 조금씩 다듬으며 살아
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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