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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이라는 마음 공부의 길에 들어선지 1년 남짓 세월이 흘렀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너무도 멀지만, 이제 막 참선에 입문하려는 초심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제까지 제가 이해한 바를 여기에 정리해봅니다.
선(禪)은 우주와 인생에 관한 의문을 해결하려는 인도인들의 끈질긴 사유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단어로서 산스크리트어로 구성된 인도경전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선나(禪那)로 음역하였다가 선(Zen)으로 바뀌었습니다. 다시, 앉아서 수행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좌선에 참구한다는 의미가 곁들어진 참선으로 변천 되어 왔습니다. 참선의 목적은 ‘내가 누구이며, 이 우주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알아’ 즉 밝은 지혜로 어둠(無明)을 걷어내고, 걸림 없는 대 자유의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현대과학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150억년전 우리의 이 우주는 빅뱅 즉, 대폭발로 시작되었고, 45억년전 어느날 그 우주 안에는 지구라는 별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다시 10억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면서 기묘한 화합작용에 의하여 지구에는 생명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장구한 생명 진화의 역사가 계속되어 수백만년 전에야 비로서 인간이 지상에 태어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진실을 깨닫게 됩니다. 곧 인간도 다른 모든 생물(더 나아가 무생물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존재)과 마찬가지로 똑 같은 조상을 가졌으므로 일체동근(一切同根)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여러 요소들이 잠시 인연으로 모여진 유기체’ 일 뿐이어서, 일체 평등하며,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따른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섭리란 무엇인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고정 불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끝없이 변해가기 때문에, ‘나’라고 주장할 독립된 주체가 없다는 것입니다.(諸行無常, 諸法無我) 또 그 변화의 원동력은, 신(神)의 힘이 아니라,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는’ 철저한 인과(因果)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業力) 따라서 우리 인간 또한 ‘지은대로 이루는 섭리’에 따라 끝없이 변해가는 과정(緣起)에서, 잠시 이 모습을 한, 한시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해있는 이 우주의 실상은 무엇일까?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현대물리학의 한 이론을 잠시 빌려보면,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물질을 ‘소립자’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가졌다고 하였습니다. 입자성이란 우리에게 보이는 질량과 부피를 가졌다는 말이고, 파동성이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의 운동(에너지의 흐름)이라는 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에서 E=MC²(에너지=질량x빛의 속도의 제곱)이라고 하였습니다. 곧 ‘에너지는 질량에 비례한다=>에너지가 있는 것은 질량이 있다=>질량과 에너지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라고 우리는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의 존재가 아주 조그만 입자로 있으면서 동시에 끝없이 움직이며 퍼져가는 파동일 수 있을까? 현대 물리학은 그것이 사실임을 밝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 모든 존재는 고정불변한 것이 없이 계속 변화하고 있다.(皆是虛妄) 둘째, 둘로 보이지만 더 깊이 제대로 들여다보면,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에,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다.(色卽是空, 空卽是色)
얼마나 많은 깨달은 이들이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고,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이 둘이 아니고, 본체와 현상이 둘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강조하여 왔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는 일상 속에서, 너무나도 이분법적인 사고에 젖어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옳다, 그르다’, ‘좋다, 싫다’, ’잘났다, 못났다’등등…, 이러한 분별심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다시 ‘모든 것은 마음 안에 있다’(一切唯心造)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게 됩니다. 즉,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는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마음의 작용(無明)으로 이런 분별심이 생겨난 것입니다.
진리는 설(說)해지거나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의 모습으로 그냥 드러나 보여지는, 있는 그대로의 순수함입니다. ‘그대들은 자기 자신을 등불 삼고, 자기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라. 그 밖의 누구도 귀의처로 삼지 말라. 그대들은 진리를 등불 삼고, 진리를 귀의처로 삼아라. 그 밖의 무엇도 귀의처로 삼지 말라’(自燈明 法燈明)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에 있어 참다운 귀의처는 몸소 경험하고 검증한 법(法), 진리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진리에 대한 직접적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절대적으로 고요한 마음속에서 분명한 자기자신을 관찰하는 일입니다. 참선은 그곳에 이르는 가장 훌륭한 방편입니다. 참선수행을 통해 성주괴공(成住壞空)하는 자연의 섭리를 정확히 꿰뚫게 되면, 만상에 끄달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한 마음으로, 걸림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급변하는 현대사회를 가장 잘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주어진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더 넓은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즉 대긍정심(大肯定心)을 가진 참 사람이 되는 길 뿐입니다. 참사람이란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연히 깨달아서, 탐 진 치(貪 瞋 癡)에 물든 고정관념으로부터 해방된 진정한 자유인을 말합니다.
참선 수행을 통해 ‘자연의 섭리’ 즉 존재의 연기(緣起) 이치를 확연히 깨닫게 되면, 나의 주장과 집착이 엷어지고, 심신이 맑고 가벼워집니다. 그러면, 자신이 이해한 바를 기민하게 능동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저항 없는 강한 힘을 갖게 됩니다. 즉, 일상이 참선의 이치와 같아지면, 지극히 맑고, 밝은 순수한 마음상태가 유지되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의식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이러한 인성의 소유자는, 더 밝은 지혜와 가장 효율적 의식체계를 갖추고, 시대를 선도하는 사람으로, 현대사회의 주어진 소명을 훌륭히 완수할 수 있습니다.
이상 참선의 진면목에 관한 개략적인 고찰을 통하여 선 수행의 소중함을 밝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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