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위에 쓴 일기
이름 : 心眞華 작성일 : 2001-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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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에 처음 불교를 접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불교라는 것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는데 내가 이렇게 심오한 참 선법을 공부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 불교 수행이라고 시작한 것은 막연히 절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절하는 것에 대한 의미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주위의 권유와 그저 좋은 운동이 된다는 것에만 심취하여 열심히 하였다.

오체투지하여 절을 하는 행위가 운동도 되지만 부처님에 대한 예의 표시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한번 한번 절을 할 때마다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슴깊이 느낄 수 있었지만 그때 까지만해도 무엇이 참 불교인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부처님은 그저 만능자라고 생각했기에 열심히 믿고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 세웠던 願은 "이번 생에 꼭 성불을 하도록 도와주십시오."였으며, 무조건 절대자에게 빌고 구하고 하면 이룰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것 중에는 성불을 하면 다 된다는 것과 그 성불이 무엇에 쓰려고 했던 것인지 그 쓰임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성불만 염원하였다.

실상관법을 하기 시작한 것은 우곡선원에서 참선 공부를 하면서였다. 관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선사님의 말씀대로만 따라 갔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고 느낀 것은 그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맥박이 온몸으로 느껴지면서 육체의 작용에 민감해져갔다. 그러면서 시야가 환해지는 느낌이 가득한 것이 처음 觀수행을 하면서 다가오는 현상이었다.

실상관법은 호흡을 낮추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호흡을 낮춘다는 것은 우리가 가장 안정된 마음을 가졌을 때 스스로가 숨을 쉬고 있는지 전혀 인식하지 않으면서 쉬는 숨. 즉, 마음이 들뜨지 않는 가운데 가장 편안한 숨을 쉬는 것이 호흡을 낮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호흡이 익숙해 질무렵 花觀을 했다. 화관은 선사님께서 초심자들을 위해 좌선을 시작하기 전 방편으로 일러주신 것이었다. 붉은 꽃잎 한송이가 이마에서부터 단전으로 내려오는 것을 그리면서 나중에는 그 꽃잎을 붉은 구슬로 만들어 단전에 住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처음 하면 잘되지 않지만 관법은 하면 할 수록 더욱 어렵게만 느껴졌다. '어떻게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만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버리고 된다는 믿는 마음을 가지고 내버려두니까 조금씩 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일상관 즉, 태양을 관하는 것을 시작했고 일상관을 한 뒤에는 사람의 근기와 몸 상태에 따라서 해야하는 관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지난 학기에 학교에서 수업을 받으면서 안 사실이지만 이러한 것이 『남전대장경』의「해탈도론」1)에 쓰여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用] 구체적인 내용은 없고 단지 관법의 대상과 그에 대한 이익을 이야기 할 뿐이었다. 관법의 내용은『관무량수경』에만 있는 것인줄 알았는데 남전대장경 안에 이러한 내용이 있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수행을 하면서 경계해야 할 것은 我相과 口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해야겠지만 나의 경우는 특히 더했다. 그 뒤로 말을 하는 것에 조금 더 생각을 하게됐고 아상은 부모님의 채찍질 덕에 조금이나마 벗어 날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러한 습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것을 끊어 내는데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수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변화한 것은 마음 상태였다. 신체적 변화는 아주 미미하지만 마음의 변화는 아주 큰 것이었다.

나는 친구들의 일에 흥분을 잘 하고 싫어하는 것도 많았었다. 친구들의 일을 내일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지만 내가 다 해결하려고 하고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 혼자 흥분하여 날뛰던 적이 많았다. 지금은 이런 것들에서부터 점점 객관적으로 관조하는 자세가 되어지고 성격도 차분하게 조금씩 바뀌어 갔다. 또한 집중력도 많이 늘어갔다. 전에는 한곳에 집중을 잘 하지 못해 이것을 하다가도 저것을 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하나에 집중을 하면 다른 것들에 신경이 안 쓰여서 친구들에게 오해를 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조바심을 내는 마음도 줄어들었고 혼자 공상을 하던 버릇도 많이 없어졌다. 이런 것들이 없어지니 차츰 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이익이 되는 일이 많아 졌다.

처음 육신의 기능이 바뀌어지는 현상도 미미한것 같았지만 사실 나에게는 아주 큰 변화를 맞이하였다. 퍽 좋지 않던 신장도 거의 제 기능을 찾고 걸핏하면 체했었는데 이제는 돌덩이도 소화시킬 만큼 소화력도 좋아 졌다. 어렸을 때 다쳤던 팔이 처음 수행을 시작할 때 다시 아프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거의 다 나아가고 구부정하게 앉던 버릇도 많이 없어졌다. 사실 지금 이야기한 변화는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 공부는 나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었기에 긍정적 변화들이 무척 많았다.
 
불교 경전 등 수행에 관한 책만 많이 읽고 많이 알기만 하면 마음 수행하는 데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도 내 안의 마음가짐이 삐뚤게 놓여져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울퉁불퉁한 거울에는 아무리 잘 비추어봐도 울퉁불퉁하게 밖에는 안 보이니까 말이다. 지금은 수행을 하는 것이 마음을 위한 것임을 알고있다. 그전에는 머리로만 알았지만 지금은 정말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나를 일깨우는 스승은 멀리 있지 않다. 주위 모든 만물이 스승이고 지금은 부모님이 나에게 가장 큰 스승님임을 느낀다. 내게 항상 채찍질을 해주시고 대화로 내 잘못된 부분들을 고쳐 주시니 말이다. 내가 공부하게 해주시는 부모님과 도반님들의 기대와 수고가 헛되지 않게 열심히 정진할 것이다.


1)Vimuttimagga
十遍業處의 赤遍·火遍
赤遍
"적편을 파악하려는 자는 적빛이 나는 꽃이나 옷감 등을 통해 적색의 상을 파취(把取)한다."
"The practised yogin graps the sing in a natural place, i.e, on seeing red flowers or red clothes anywhere."
「The pass of freedom (Vimuttimagga) p.126」
火遍
"화편을 파악하려는 자는 등불, 나무의 불, 숲의 불, 집의 불 등에서 그 상을 파취한다."
"On seeing any fire, i.e, a grass-fire, a wood-fire, a forest-fire or a house that is on fire"
「The path of freedom p.123」
이러한 불 말고도 해가 뜨는 것이나 지는 것에서도 이러한 상을 파취 할 수 있다.
화편의 이익은 생각을 밝게 해주는데 있다.

火觀은 불의 작용과 형상에서 상을 파취하여 지혜 즉, 생각을 밝게 가질 수 있으며 더불어 양양한 심신을 도모하고 그 힘으로 통찰력을 증장시킬 수 있다.[柱 牛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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