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풍경소리
이름 : 慧蓮華 작성일 : 200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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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간순간 새로 태어나려한다.
그리고 두터운 훈습(薰習)의 허물을 벗어내기 위해 지금 이 수행의 길을 걷고 있다. 가끔씩 "젊어서 이 공부를 지어가니 얼마나 대복이냐"라는 말을 주변에서 듣는다. 그럴 때면 한편으로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뒤따르곤 한다.

신사년 새해가 밝았고 이제 난 대학 4학년 졸업반이 되었다. 내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방황 속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기에 평소 마음작용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과 불만, 일시에 털어 버릴 수 없는 답답함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 가식과 외적 모습에 치중해 항상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여린 중생의 삶이었기에 마음공부에 관한 한 장님과도 같았고 귀머거리와도 같았다. 이런 무지한 내 자신이 불법(佛法)을 만나 지금 이 공부를 지어나가기 까지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 우연처럼 여겨지는 필연이 지어준 인연 공덕이라 생각한다.

불법(佛法)과 인연이 닿기 직전의 내 심리상태는 온통 내 마음작용에 대한 불만과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몽상가로 때론 떠돌이 철학자가 되어 통제하지 못하는 내 마음작용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려는 욕구 등으로 심신은 늘 지쳐있는 상태였다. 되돌아보면 내 자신이 참선공부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공부를 지어 간다는 건 내 생각만으로 되지 않는 힘든 과정이다. 사실 마음공부라고 해왔지만 무엇이 수행이고 마음인지, 내가 무엇을 하는지 조차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날들이 더 많았었다. 그저 남 따라 장에 가듯 이곳 저곳으로 휩쓸렸었고 신비스럽게 여겨지는 불교와 함께 깨달음이란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깨달아져 우뚝 솟은 높은 사람이 되어지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처럼 처음부터 선(禪)공부에 대한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불교의 가르침, 그 중에 간결하고 단호한 우곡선원의 참선법(參禪法)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말들이었기에 내 견해와 맞지 않을 때는 마음의 갈등도 많이 겪었다. 또한 보고들은 대로 내 마음과 행동이 옮겨지지 않을 때는 모든 것이 다 귀찮고 죽고싶을 심정일 때도 있었다. '나는 왜이리 수행이 안돼는 것일까'부터 시작해서 항시 남들과 비교하고 왜 나는 넓게 이해하지 못하며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할까...등등 끊임없는 자괴감에 빠져 오히려 마음 공부길이 고통으로 다가온 적도 많았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에서 서서히 반전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전의 일이다. 자괴감에 빠져 있는 것은 고민할 대상이 아닌 묶여있는 자신의 생각 때문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체감하고부터 이다. "자기생각에 묶이지 말라"는 선사님의 법문을 자주 들어왔지만 올바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가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때 이후로 차츰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관조하기 시작했고 고질병 같던 내 생각에 깊숙이 빠져드는 일도 개선되어지기 시작했다. 글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내 자신이 모든 상황을 탐지 분석하고 인식할 수 있는 고성능 레이더와 같은 깨어있는 의식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나는 내 마음과 타협해 버렸을 때가 가장 고통스러웠다. 분명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언행하고, 그것을 알면서도 떨쳐버리지 못하는 나약함은 반드시 후회스런 마음과 육신의 아픔을 불러들이는 주원인이 되었다. 이처럼 회한을 불러들이는 마음상태를 경험할 때면 분명하지 못하였던 언행들이 비수가 되어 되돌아온 것 같았고 이런 처지로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조차 위선으로 느껴졌다.

스스로 나를 감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는 듯 하다. 바깥대상으로 인해서가 아닌 자기 생각에 스스로 묶여버렸을 때는 판단력도 흐려지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마치 눈이 멀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면 혼자 힘으로 헤어나기 어렵기에 선배 도반님들이나 선사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나는 참선공부를 잘 하면 힘도 생기고 지혜도 생긴다는 가르침을 믿고 어느 누구보다도 잘난 인생을 살 것이라는 소아(小我)에 묶인 새로운 탐심을 키웠던 어리석은 순간도 있었다. 물론 수행을 통해 지금의 내 생활은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할 정도로 삶의 모습이 급변되었다. 그것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가치관 정립과 교수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학교생활 등이다. 이처럼 수행이란 자기 마음을 잘 닦아서 자신에게도 걸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며 그것은 겸허한 마음 자세가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수행하면 현실과 담을 쌓고 속세를 멀리하며 마음을 닦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이 보편적 논리이기에 한때 나도 학업을 중단하고 산사(山寺)의 풍경소리에 취한 감정 등으로 인해 머리를 깎고 입산해 버릴까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 충실하는 원래 불법(佛法)의 정수인 참선(參禪)공부를 만나서 나는 의식전환이 되었고 충실한 삶을 기약할 수 있는 능동적인 마음가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즉, 나의 삶 나의 언행을 스스로 코디네이터 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주 禪師님이 설법하신 돈오입도요문論 강설 중 "성인은 마음을 구하고 부처를 구하지 않으며, 어리석은 자는 부처를 구하나 마음을 구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 동안 마음 밖에서 무엇을 구하려는 것을 수행으로 삼아왔지 않았나 돌아보게 되었다. 내 수행의 과정은 나를 다듬어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는 재 창조과정이다. 행동을 할 때나 말을 할 때, 그 외의 순간 순간에도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마음작용이 외부로 표출될 때를 가만히 살펴보면 몰라서 못 다스릴 때, 알면서도 다스리지 않을 때, 다스려서 올바로 쓸 때 등등 하루하루 내 마음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반복되는 시행착오도 있다. 이 모두가 중생심을 내려놓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결코 힘든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의 주인이 견고해 질 때까지 계속할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가면서 다가올 수 있는 어떠한 역경이나 고난도 두렵지 않다. 또 하나 넘어야할 장애물에 불과하기에 피하거나 포기 해버리지 않을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수행은 마음의 평온함만을 추구하기 위한 방편일 수 없다. 단지 어느 상황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여여함을 기르기 위한 노력이다.

마음은 모양도 없고 만져질 수도 없지만 행동이나 언어로 마음모습이 표현되어진다고 알고 있다. 수행이 어떻고 법이 어떻다고 얘기 하지만 순간순간 드러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 할 때면 자신의 한계를 보는 듯 하여 스스로 부끄러워 질 때가 많다. 수행은 배우고 익혀야 할 일도 많고 그 지어 가는 방법도 여러 가지지만 그 근본은 자기 마음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고 알고있다.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그 마음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맹목적으로 끄달리던 종속적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위한 길인 낮은 마음, 진솔한 마음으로 거듭난 참인간으로서의 미래를 열어가고 싶다.

이 글을 수행일기에 띄우기엔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용기가 마음공부를 지어나가는데 경책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경책 있기를 바라며 이 장을 빌어 선법(禪法)을 펼치시는 禪師님과 선배 도반님들의 이끌어주심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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