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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是我聞, 나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本 禪院 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牛谷禪師님의 돈오입도요문論 제1강 법문을 듣고 저 나름대로 한 번 적어보았습니다. 혹여 禪師님의 강설을 바르게 이해 못했을까 두려우나 단지 학인의 입장에서 제가 아는 지식을 가지고 좀더 쉽게 풀어보려 노력하였습니다. 아울러 다른 도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하여 수행록에 올려놓습니다.
1. 불보살께 헌사(獻辭)에 대해
요즈음 너무도 덜된 사람이 많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고 어떻게 하면 자기를 들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분명하지 못한 것은 설익은 밥을 먹는 것과 같고 선무당이 생사람 잡는 노릇과도 같다. 현재 그러한 사람들이 세상을 무척 어지럽게 하고 있다. 정신세계에서는 조금 맛본 것 가지고 도통한 것처럼 행사하는 똥도사들이 판을 치고, 저자거리에서는 준비되었다고 큰소리 치는 사람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자신의 지식을 뽐내려하고 조금 맛본 것 가지고 설쳐대는 세상에 혜해스님의 헌사는 진정한 공부자의 자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 헌사를 통해 우리는 혜해스님의 지극히 겸허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이는 자기의 주장이나 자신의 공부를 들어내려하지 않고 지극히 낮고 겸허한 마음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심 된 겸허한 마음에 부처의 마음[佛性]이 안착한다. 즉 내 주장 나의 지식을 들어내려는 마음이 가라앉은 그 자리에 비로소 불성이 작용한다. 겸허한 수행인의 한 사람으로서 대주 혜해스님의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들어낸 것이기에 돈오입도요문論은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2. 頓悟(의식의 혁명적 전환)
인간은 이미 깨달아 있다. 부처이다. 이미 돈오 되어 있는 상태이다. 우리는 단지 진정한 자신의 본모습을 몰라서 탐·진·치 삼독에 가려진 무명의 자신을 지키고자 발버둥치고 허구적으로 만들어낸 세상을 자기 식대로 만들고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삶은 허망하고 고통일 뿐이다. 이러한 삶으로부터 벗어남이 해탈이다. 어느 것에도 묶이지 아니하고 모든 집착심을 놓은 여여한 평상심의 회복이 해탈이다. 해탈적 삶에 이르는 문은 돈오(頓悟)라고 하는 한가지 문[一門]밖에 없다. 돈(頓)은 바로 혁명적으로 단박에 모든 망령된 생각을 몰아내는 것이다. 중류절단(衆流截斷), 끝없이 흐르는 중생심을 단박에 절단함이 돈(頓)인 것이다. 허구적으로 만들어 놓은 자신의 고정관념을 단호하게 끊어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전환하는 그것만이 우리를 해탈에 이르도록 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오(悟)라 함은 소아(小我)에 묶여 무엇인가 얻어보고자 몸부림치는 유소득(有所得)적인 삶이 허망하다는 것을 사무쳐 알고, 소아로부터 탈피하여 열려있는 마음을 바탕으로 우주적 힘과 하나됨을 증득함으로써 대아(大我)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우리는 원래 무아(無我)임을 확연히 알아 얻고자 하는 마음, 잃고자 하는 마음, 어떠한 마음도 자신을 위해 세울 것이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음이 바로[悟無所得] 오(悟)라고 혜해스님은 갈파하고 있다.
"그렇게 하자면 무엇을 닦아야 한단 말인가? 혜해스님의 답은 근본부터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근본이 무엇이란 말인가? 근본은 바로 마음이라는 것이다."이는 수행의 핵심이 무엇인가 물음에 돈오를 하려면 그 요령을 잘 알아야하는데 그 요령은 마음을 닦는 것이라는 것이다. 요령(要領)은 허리 요자에 목 령자다. 요령이라는 말은 개를 잡으려고 하면 허리가 핵심이기에 허리를 붙잡아야 하고 고양이를 잡으려면 목이 핵심이기에 목을 잡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나왔다고 한다. 소를 잡으려고 꼬리를 잡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리를 잡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소를 붙잡으려하면 고삐를 잡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핵심이고 소를 움직일 수 있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핵심 즉, 근본을 잡아야 한다. 혜해스님은 우리가 해탈하여 진정한 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돈오를 위한 핵심은 마음을 닦는 것이라고 그 요령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다.
왜 그러한가? 능가경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기에 그렇다. 일체유심조란 이 세상의 만물은 마음 안에 있다는 말이다. 선(善)함도 악(惡)함도, 부처도 중생도 마음 안에 존재한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중생의 눈으로 볼 때는 성인도 있고 부처도 있고 어리석은 이도 있다. 몸도 있고 마음도 각각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은 다 마음 안에 있을 뿐이다. 그러니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소아(小我)에 묶여 허구적 현상을 만들고 분별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을 취하고자 한다. 그것이 곧 우리가 닦아야 할 중생심(衆生心)이다. 거인욕(去人慾)하고 존천심(存天心)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인욕은 중생의 마음이고 천심은 무소득의 하늘마음이다. 하늘은 선악(善惡)을 가려 비를 내리지 않는다. 태양은 시비를 가려 빛을 주지 않는다. 선도 악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묶이지 않고 해야할 일을 할뿐이다. 이러한 하늘마음에 닿도록 중생심을 닦는 것이 곧 돈오의 요령이라는 것이다.
돈오(頓悟) 하고자 아무리 밖으로 돌아다니며 구한다고 구할 수 없다. 우리 내적 성찰만이 거인욕하고 드디어 존천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늘마음은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그 마음은 월인천강(月印千江)이다. 천 강에 고루 비추일 수 있는 달처럼 천심은 늘 우리 안에서 빛나고 있다. 안으로 마음을 관조하여 깨치면 한 생각 사이에 우리는 존천심할 수 있다. 즉 단박에 진리를 증득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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