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행자의 삶
이름 : 小乘 작성일 : 2000-12-29
첨부 파일 :


60나이에도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은 많다. 삶의 형태나 나이에 상관없이 '나'라는 존재를 확연히 알아야 되는 일은 일생에서 꼭 풀어야할 과제다. 그 일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 온 곳을 알고 갈곳을 아는 지혜를 배워 황혼에 도달한 이 나이에서야 겨우 잘못된 삶을 아쉬워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일부터이다.

뒤늦게 시작한 마음 공부라 그만큼 난관도 많지만 성취 욕도 많은 편이다. 내 노력의 결실이 있어 나날을 즐거운 마음으로 건강하게 잘 살게 된 것에 스승과 인연 모두에게 감사 드리며 가식 없는 수행 여정을 적어본다. 약 세시간의 서울 본원 법회를 마치고 선원 문을 나서는 시각은 거의 자정이 가깝다. 이 때면 얼굴은 열기가 넘쳐 벌겋게 달아오르고 몸은 날아갈 듯이 가볍다. 잡념이 사라진 맑은 머리로 강원도 귀가 길은 약 세시간이 걸린다.

매주 반복되는 2년여의 법회 참석이 있기 전 그 해 이른 봄, 牛谷 禪師님의 법문을 들은 후 그 날 저녁 나는 40여 년을 줄기차게 피워대던 담배와 술을 끊기로 결심하고 즉시 시행하였다. 50대 후반의 긴 어둠 속의 삶에서 혁명적이라 할 대 탈주를 시작하는 초로의 사내는 생전 처음 여법한 법회에 참가하여 108배 참회를 시작으로 간략한 예를 올리고 충격적이랄 수밖에 없는 법문을 들은 뒤 환희지 속에서 도시 고속도로를 거처 경춘가도를 내달렸다.

신기하게도 해만 저물면 자리에 눕던 약골인 내 육신은 습관마저 잊었는지 눈빛은 빛나고 의식은 아주 맑아 집에 도착해서도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이날이 나로서는 전생과 금생을 살면서 육근 작용에 끄달리기 만했던 어두운 훈습에 강력한 밝음의 에너지 파를 맞은 대복 터진 날이며 일대사 인연이 닿았다고 생각된 날이였다.

바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의 거친 삶은 뚜렷한 목적 없이 부귀와 영화를 찾아 밖으로 구하는 중생의 삶이었으며 다가온 경제적 위기는 시대의 낙오자와 같은 초라한 신세로 전락되어졌었다. 주마 강산 하듯 이산과 저 절로 떠도는 신세는 생의 종착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절박한 시간에 홍천 수타사에서 牛谷禪師님의 구도기 "놓고 비우고 버리기"를 만났다. 그로부터 5일 후 산본 선방에서 경청한 물 흐르듯 시원하고 그러나 난해한 법음(法音)은 내 집착으로 가로막힌 귀 구멍을 꿰뚫고 들어와 의식의 창고에 겹겹이 눌러 붙어 주인 노릇 해오던 나라고 집착하는 習因에 멋지고 시원한 KO 펀치를 먹였다.

대다수 불교인들의 수행 모습이기도 한 기복과 맹신의 양태를 따라 어설프게 접근한 불도는 나 역시 빌고 구하는 것이 다 인줄 알았다. 그러나 이날 만난 牛谷의 禪法은 내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트려버렸다.

불법(佛法)은 완전한 철학이며 살아 숨쉬는 초 과학임을 단박에 일깨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녘 잠시 눈을 부치고 일어나니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세상이 갑자기 바뀌어 버린 듯 보이는 모든 것이 멋있고 살만한 세상이라는 긍정심에 가슴이 뿌듯하고 이제 확실히 살길을 찾은 것 같은 감사함에 스승님 계신 서울 쪽에 삼배를 올리는 마음이 일어났다.

갑자기 의식 전환이 된 대가도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늘 어둡던 마음에 밝고 큰 충격이 가해졌음인지 종종 어지러움증이 일어나고 의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이 자제치 못해 30년 무사고 모범 운전자가 일주일동안 자동차접촉사고와 충돌을 야기할 뻔한 놀랠 일도 벌어졌다. 또한 법회 참가를 거듭하는 두어 달 여는 배속은 아프지도 않은데 화장실만 가면 설사를 줄줄 해대면서도 기분은 상쾌해 지는 것과 그러면서 정신은 맑아 난마처럼 얽혀있는 삶에 대한 숙제의 해법이 훤히 보이기 시작하였다. 힘겨운 과거 시절과 상대를 원망하고 현실을 기피하며 살아온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면서 시간을 아껴가며 "놓고 비우고 버리기"를 반복해서 탐독하고 그로부터 생겨나는 용솟음치는 힘으로는 갖가지 난제들을 풀어가고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는 등 긍정적인 삶으로 거듭 태어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법회참가를 지속하며 희망적인 삶으로 거듭나는 나날들은 '극락'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즐거운 생각을 하였으며, 또한 이 세상에 이렇게 잘사는 방법도 다 있구나 싶은 희열 속에서 내가 이 비법을 익혀 간다는 사실이 얼마나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지 몰랐다. 우곡선원의 갖가지 수행 법은 인간된 도리법을 요해하여 사람답게 살아야함과 하심 하는 마음은 예와 덕이 삶의 초석임을 깨닫게 하는 참으로 귀중한 지혜를 갖추게 하였다.

공부를 시작한지 삼 개월도 못된 시기에 뜻도 제대로 모르고 떠난 만행 길에서는 실상관에 대한 실천 수행을 하고 대 자연에 함몰되어 이치를 섭렵케 하는 수행의 진면목을 접하는 감격은 한마디로 경이로움 그것 이였다. '나'라는 실체를 조금씩 알아감에 따라 건강은 현격히 좋아지고 의식은 밝아져 객관적 삶이 내 것이라는 것에 도취되기도 한다. 그러나 수행이 자유자재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나만이 공부가 안 되어지는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도 하며 연륜에 따른 무능력을 한스럽게도 하는 허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기능적 수련은 수행의 한 방편이고 이치를 확연히 꿰는 일이 우선한다는 가르침에 미망의 苦가 놓여지기도 한다.

또한 생후 처음으로 시작한 익숙하지 않은 사부대중이 함께 하는 수행생활은 선원의 최고령자라는 상을 내어 공부 길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기도 하며 도반으로서의 소명을 다하지 못하는 갖가지 현실문제는 안타까움에 입술이 마르는 초조함도 함께 한다. 공부를 위해서는 촌음을 아껴야하듯이 지금은 난마처럼 얽혀있던 반연을 정리하고 우곡선원 부산지원에서 본격적인 수행이자 관리자의 소임을 맡고 있다. 물론 건강하고 안과 밖이 참으로 많이 변화된 나를 본다.

선원에서의 수행 중에는 호흡이 떨어지고 의식이 흐트러지지 않는 초선이라 할만한 아주 편안한 나를 가끔씩 보기도 하고 단전에는 일상관이 뚜렷이 자리를 잡아 기혈이 잘 도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놀래기도 한다. 만행 정진 중에는 자연에 함몰되어 무한정으로 나를 세분화하여 확대시켜 무한 공간을 자재 하였던 의식을 되돌리고 스승께 점검을 청하기도 한다. 20㎏의 체중이 늘어 화기가 차 검둥이 같던 피부는 희며 늘 화색이 돈다.

이처럼 소중한 공부를 위한 것이기에 내 육신을 통한 보시를 해서라도 회향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개인적인 사연을 모두 접고 수행인의 가교 역할을 위한 선원의 소임을 자청한 부산 해운대 우곡선원에서의 생활도 어언 백일이 지났다. 선원 소임자로 거듭 난 삶은 갖가지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천태만상의 군상들과 어울린 생활은 때로는 안타까움과 스스로 한계에 놓여진 아쉬움에 가슴아파할 때도 있지만 이제 눈앞에 다가온 희망적인 문제들로 나를 지우고 대중적인 인생이 되어지길 늘 염원하고 있다.

우곡선원의 기치와 철학은 모든 중생의 등불이며 희망이다. 종교에 국한된 작은 수행이 아닌 인간의 生과 死 그 끝까지를 포용한 대 철학세계를 구현시키려 하는 데서 그 원대한 힘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人間佛事의 요람인 禪 Center 구축 등 결코 만만찮은 현안들이 있으나 그것은 우리 모두 가야할 공동의 삶이기에 분명히 성취될 것이고 나 역시 미력이나마 대중 願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늙은 행자로 거듭난 삶이자 회향의 도리라 생각한다.

 
이전 글 수행점검
다음 글 月印千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