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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발심의 점검
인연의 자리는 모든 출발이 나로부터 시작이 되므로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눈뜬 자리에서 그대로 나의 주변의 인연있는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을 내고 일어난다.
수행자는 누구나 처음 시작할 때 각자 서원을 세워야[自利利他] 공부가 된다고 배웠으나 아직은 감당도 못할 "중생무변서원도"가 아닌 "번뇌무진서원단"을 1차 서원으로 세우고 수행하여 가고 있다.
나는 정말로 나의 업장(業障)이 두텁다. 따라서 현재는 이 두터운 업장을 녹이면 번뇌가 끊기며 내가 누구인지 확연히 드러날 것이며 그럼으로써 걸림 없는 대자유의 길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고 수행을 해 나가고 있다. 호흡의 경우도 업장이 하나 하나 없어지면 없어지는 만큼 호흡이 조금씩 떨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따라서 업장이 소멸되지 않는 한 호흡이 완전히 떨어진다는 것[禪定三昧]은 힘들기 때문에 호흡에[살아 있는 한은 어떠한 형태로든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이므로 반복적인 동작이나 행위에 묶이지 않아야 함] 관점을 두지 말고, 관법(觀法)에[순수에너지의 계합으로 공덕을 쌓기 위한 실천] 더욱 충실하려고 노력 하며 관법이 끊긴다든지 아니면 안된 다든지 할 때 다시 한번 나를 추스른 다는 마음으로 가능한 한 날숨 호흡을 하고 다시 관법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 이유는 관법만이 나의 업장을 녹이고 씻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수행의 본질은 시절인연이 도래할 수 있도록 관념의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기다리는 것이다.
2. 현재 수행의 점검
사람들은 가끔 어떠한 삶이 가장 값있고 보람된 삶일까 하고 생각해볼 것이다. 보통은 살아서 생명을 보존하는 것만으로도 숭고하고 존엄한 일로 생각하지만 선지식들은 대자유인으로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혜[깨어있음]의 삶을 살고 있다.
나의 경우 아무리 불성(佛性)이 자기 자신 속에 있다고 하지만 역시 스승의 인연이 없으면 깨치기가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다. 진정한 스승을 만난 인연은 수행에 있어서 이미 돈오는 한 상태 즉, 깨달음에 가는 길에 있어 반 이상을 성취한 것이다. 그러함에도 수행이 잘 안 되는 것은 깨달음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또 아무리 해도 내가 깨달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으려고 노력하며 지혜롭게 행(行)하려고 노력한다.
수행을 하기 전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어려서부터 익혀온 윤리기준이나 지식기준의 잣대에 비추어 모든 것을 내가 마음먹은 대로한다는 생각으로 수없이 분별하며 살아왔다. 즉 나의 주관적인 잣대로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는 편견과 분별심을 갖다 보니 매사가 불안정 한 것이다.
언젠가 선사님께서 "一切唯心造"는 "모든 것은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보면 또 다른 분별심을 만드는 것이므로 "모든 것이 마음 안에 있다" 고 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렇다, 맞다"하는 확실한 믿음으로 인식을 전환하고 보니 일상에서도 외부상황이나 환경에 흔들림이 점점 덜 해가며 설사 흔들림이 있더라도 상황이나 감정에 치우치기 보다는 전체적인 균형을 고려하는 사고로의 전환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흔들림이 없으려면 분별하지 않고 부정하지 않은 마음으로서 중심에 선 사고를 갖고 있어야 한다. 항상 중심이 잡혀있는 사람은 상대에 따라서 흑과 백을 분명히 알되 그 흑과 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여 인정하고 뛰어넘는 포용력과 지혜가 있다.
올바른 사람은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바르게 행하여 무위의 큰 공덕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기에 일시적인 위안이며 영원한 남의 것에 불과한 부귀영화에 매달려 육신의 노예가 되길 자처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3. 인연의 生滅
나는 수행을 함에 있어 이제는 남의 허물보다는 나의 허물을 철저히 냉철하게 보아서 철저하게 나의 수행을 해나가려고 노력한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이 아집[탐·진·치 삼독에 집착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끝없는 욕망을 갈구하다 보니 고(苦)가 점점 커져 나 자신에게 부딪치는 고(苦)가 점점 더 강하게 다가옴을 느낀다. 그런데 이 고통을 받는 자는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고통을 없애기 위하여서는 나 자신에게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떨쳐버려야만 한다. 그러면 그것이 곧 업장이 소멸되는 것이므로 이런 고를 극복한 "나"를 만들기 위하여 수행을 하여야만 중심(中心)잡힌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이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게 마련이다. 씨를 뿌리면 반드시 뿌린대로 거둘 것이며,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는가. 이것은 곧 과거생이든, 전생이든, 현생이든 내가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만들어 놓은 업과 습의 결과에 따라 살아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화현(化現)되어지는 것으로 멸(滅)하여야 할 대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업과 습을 만들지 않으면 현실에서 내가 반연(絆緣)을 만나지 않는 바, 이 업과 습을 만들지 않으려면 조건이 없어야 한다. 즉 조건이 없으려면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마음[더 이상 바랄 것이 없고 더 이상 할 일이 없고 더 이상 될 것이 없는 상태]으로 수행을 하면 인자(因子)가 변하고 습의 변화로 원인이 생겨나지 않음으로써 행위에 끄달림[因]을 남기지 않는다.
어두운 과거를 자를 수 있는 원대한 힘은 미래에 대한 확신에서 온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의심이나 걸림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4. 놓고 비우고 버리기의 수행
모든 것이 마음 안에 있다면 즉 일체 모든 것을 수용하는 중심 잡힌 마음이 되려면 진정한 놓고 비우고 버리기를 행하여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수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퇴전(不退轉)의 경지를 목표로 마음에 장애가 없도록 오계원을 토대로 철저한 수행을 하다보면 그것이 곧 팔정도의 수행이고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1. 佛法을 토대로 禮와 德을 배양한다. 1. 實像觀法으로 固定觀念을 정화한다. 1. 수용하는 마음으로 만상과 조화를 이룬다. 1. 大疑心, 大憤心, 大信心으로 迷惑에서 벗어난다. 1. 下心하여 時節因緣을 수용한다.
위와 같이 놓고 비우고 버리면 실상[=불법=불성=진리=正=중심=빛=순수에너지]이 그대로 드러나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있다는 생각과 물질에 젖어 있는 또 물질에 의해 평가되는 관념, 관습 등으로 사고가 굳어져 있는 즉, 내 것, 내 생각, 내 명예, 등등 이런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주지 않을 때 즉 나[我]라는 생각에 집착하기 때문에 수행이 잘 안 된다. 또 놓는다 하고 또 다 놓았다 하지만 그 놓았다는 자리에 어느새 또 다른 것이 놓은 자리를 차지하고, 비웠다 하지만 또 다른 것이 비운자리를 차지하고, 버렸다 하지만 또 다른 것을 주워 가지니 번뇌가 끊이지 않고 수행이 잘 안 되고 또 다시 고통을 갖게 된다.
젖은 나무에 불을 피려면 열과 성을 다하여야 불길이 붙듯 수행도 스승으로부터 받은 불씨를 확신 속에서 열과 성을 다하여야 수행이 제대로 될 것이다. 자기의 주인은 분명 자기 자신이다. 따라서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닌 냉철한 자기성찰에 의한 주인의 식을 갖고 확신 속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다져야 한다.
"行하고 行하고 行하면 무장(無障)무애(無碍)하여 자재(自在)할 수 있다"라는 신념으로 수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진정 힘든 것은 "정답은 알아도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라는 것을 절감하며 잘 안되고, 어려워도, 그래도 수(修)와 행(行)이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고 탁마(琢磨)해 나가도록 스스로 반성하고 점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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