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무
이름 : 圓明 작성일 : 200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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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을 보내고 나니 가을은 더욱 깊어만 가는 듯하다.  변해 가는 계절의 모습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것이 바로 산천을 지키는 나무들이다. 옛날 한 조사에게 제자가 "부처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그 조사가 "뜰에 잣나무니라" 라고 했다는 선문답이 생각난다. 한 그루의 나무에 자연의 섭리가 그대로 담겨 있으니 나무는 진정 위대한 스승이요 부처일는지 모른다. 나무는 봄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살면서 이 가을을 맞이했다. 자신의 열매를 맺기 위해 힘든 가뭄을 이겨왔고, 여름의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자신의 내적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만을 꾸준히 해왔으며 무서운 태풍과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곧게 자신을 지켜왔다. 철저하게 가장 간절한 삶을 살아왔으며 절대 고독의 시간을 지켜온 것이다.  주어진 삶의 환경을 불평하거나 역겨워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열매를 맺는 그 일에만 전념했다.

일순간도 서두르는 바 없이 위대한 자연의 힘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고, 주어진 삶을 위해 단지 자신의 발 밑만을 바라보면서 꼿꼿하게 서서 외길을 가는 모습에서 진정 위대한 스승의 삶은 발견된다. 한번도 남에게 눈을 돌리지 않고,  옆에 선 나무들을 탐하지 않고, 자신이 크고 작음에 개의치 않으며, 서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나무의 모습에서 참된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나무에게는 선악을 구분하는 분별심이 없다. 자신이 한 일을 뽐내려는 자만심도 없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는 독선은 더욱 없다.  주위 나무들과 비교하면서 그들을 흉내내고 닮아 보려는 마음,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마음조차 없이 인연에 따라 자신을 만들어 갈 뿐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방하고 상대방을 짓밟고 중상 모략을 하거나, 이 세상을 자신의 욕심대로 꾸며보려고 발부둥을 치는 일도 없다. 철저하게 마음을 비우고 오로지 자기를 온전하게 하고자 하는 일념에서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가난한 마음의 소유자가 나무인 듯 싶다.  

나무에게는 뼈대가 있다. 다시 말해 중심이 있다.  비바람이 몰아 칠 때는 잠시 흔들리지만 그 중심만은 변함이 없다. 보이지 않는 땅 속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에 두 팔 벌리고 부끄럼 없이 태양을 마주하면서 당당하게 산다. 어떤 부끄럼이나 굽힘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무는 말 그대로 나[我]무[無]이다. 나를 버리고 모든 이들에게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철저한 무소유의 실천자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나무는 그렇게 아끼고 그렇게 힘들게 가꾸어온 자신의 모든 것을 필요로 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송두리째 돌려준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신을 장식하던 잎새를 버리고 놓아 버린다. 그렇게 소중하게 최선을 다해 가꾸어온 삶의 결과를 대가 없이 나누어주면서 또 다른 부활을 준비한다. 한번도 탐내는 마음을 가져보지 않고 한번도 성내는 마음 없이 순수함 그 자체를 바탕으로 만들어온 그 모든 것을 나누어주면서 또 다른 삶을 위해 준비하는 그 겸손함과 진지한 삶의 모습에서 진정한 부처의 모습을 본다.

늦가을 낙엽이 지는 숲 속에서 무심하게 서있는 가을 나무를 바라보면서 그 동안 살아온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과연 나는 그렇게 나무처럼 간절하게 살아 왔는지, 과연 나는 그렇게 진지하게 만난(萬難)의 괴로움을 이기면서 정말 내가 해야할 일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말이다. 남들을 보고 시기 질투하는 맘을 낸 적은 없는지, 중심 없이 주위에 휩싸여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반추해본다. 내 발 밑은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만들어감에는 게을리 한 채, 남 흉내내기에 급급하고, 새롭다고 떠들어대는 지식의 조각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내 것인 냥 앵무새처럼 되 내이지는 않았는지 나를 살핀다.

저물어 가는 가을녁에 나무들은 나에게 묻는 듯하다. 내가 그간 맺어 온 열매는 무엇인가를 말이다. 그리고 아무런 대가없이 내 자신의 모든 것을 필요로 하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주고 베푸는 삶을 살 수 있는가를 묻는 듯하다. 가을의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다짐해본다. 저 나무처럼 내가 없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저 나무처럼 철저하게 땅에 뿌리를 내리고 간절하게 살아보겠다고, 중심을 가지고 주위의 유혹에 흔들림 없이 내 인생의 열매를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말이다. 하늘에 두 팔 벌려 태양을 마주함에도 조금도 부끄럼 없는 그러한 당당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올곧게 서있는 가을 나무들을 바라보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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