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과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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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妙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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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0-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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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행일기는 수행의 기초가 되는 호흡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아 재점검 해보는데 있다.
1.호흡의 의미
이 지구상에 살아있는 생명체는 무엇이든 호흡을 통하여 生을 영위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호흡 그 자체는 결코 특별한 기법이 될 수 없으며, 고등생물이거나 하등한 생물이든 제각기 고유한 방식대로의 호흡을 통하여 생명이라는 존재의 기초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피조물이듯 생물은 호흡을 통하여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아울러서 각기 고유한 생명을 지어간다. 이러한 이치에서 보자면 삶 그 자체도 호흡간에 인식되는 정신인자이며 그로 인하여 육신은 항상 변환되는 유기체인 것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호흡도 총체적 시각으로 보면 다른 생명체의 호흡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다른 하등한 생명체와 크게 차이가 있는 것은 호흡간에 자율적 인식능력인 의식을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를 통하여 창조적 삶을 영위해 간다는 것이다. 더더구나 정신 수행자는 통제된 호흡을 통하여 인간의 근원적 가치관인 절대 순수에 근접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호흡의 중요성을 더욱 간과할 수 없다.
호흡[숨]은 영(靈)과 육(肉)을 결합시키는 근본적 연결고리이며 생명이라는 불꽃을 꺼지지 않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생명체에서 호흡이라는 수단이 끊어지면 그 생명체는 즉시 영과 육이 분리되어 서로 상반되는 길을 걷게된다. 肉[육신]은 원래 자리인 地.水.火.風 四大로 분리되어 자연으로 되돌려지며 靈[정신]은 육신을 토대로 스스로 지은 업습(業習)만큼의 공과를 짊어지고 윤회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성주괴공하는 우주질서 속에서 피조된 유기체이기에 인식의 유·무와 스스로 고착화시킨 탐착에 아무 상관없이 너와 나, 자신이라는 일정한 형상을 항상 유지하지 못한다. 이렇게 항상할 수 없는 것이 대 자연의 섭리이듯 호흡 있는 생명체는 반드시 생주이멸해야 되는 숙명을 맞게된다. 이러한 사실은 왕후장상도 예외가 되지 못한다.
우리 인간의 정신과 육신은 가장 정교한 우주의 조합 물이기에 생명의 기초인 호흡을 잘 다듬을 필요가 절대로 있다. 의식의 주체인 호흡을 알맞게 통제하지 않으면 생존요인으로 인한 탐심이 한쪽으로 치우친 육신과 정신을 길러 결국 육신의 주인인 정신 균형이 파괴된 노예적 삶이 되어진다.
생명력이라는 것은 호흡간에 내재되어 있는 유한 에너지이며 성주괴공하는 자연섭리에 반드시 귀납된다.
2. 들숨과 날숨
우리의 정신과 육신을 연결해주는 숨은 들숨과 날숨이라는 두 가지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체적으로 동일한 질량을 가진다. 그러나 보편적 인간은 탐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들숨일 때 외부의식을 내부로 끌어들여 쌓아 놓으려는 본능에 사로잡혀 있다. 대체로 지식과 경험의 인자들, 그리고 종교적 의인상과 갖가지 가르침의 단어들까지 내부의식으로 전환시켜 차곡차곡 비축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있는 편이다. 이러한 것들은 탐심에서 비롯된 것이며 결국 집착의 根이 된다. 외부의식을 내부로 끌어들인 것만큼 낮고 어두운 의식의 소유자가 되어 호흡을 담는 마음그릇이 협소해진다. 즉, 영원성이 없는 외부의식을 내부의식으로 비축한 것만큼 생명력의 함량이 그만큼 작고 혼란스런 인간이 되어지는 셈이다.
세간에 널리 알려져 응용되고있는 호흡법의 대부분은 우선적으로 흡기 즉,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둔다. 우선 외부 공기를 신체 내부로 많이 끌어들여 그것을 통제하여 천천히 외부로 적게 내보내면 그것 자체가 큰 공부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호흡은 깨달음이 평상심이며 만물이 도의 본체인 자연의 순리에도 크게 어긋날 뿐 아니라 고이면 섞는 이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지극히 편협한 인간들의 발상에서 피조시킨 수행 법이다.
일반적인 호흡을 잘 관찰해 보면 들숨에 의식은 올라가고 날숨에 의식이 내려간다는 사실을 별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다. 생명의 근본인 들숨과 날숨이 조화롭게 유지된다면 삶에서 별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집착심이 떨어지지 않는 인간은 의식이라는 호흡간의 인식작용이 동물적 습성인 육근 감각에 끄달려 다닌다. 이렇게 하등한 의식작용과 맞물려진 호흡 즉, 들숨은 외부의식을 내부로 비축시키는 요인이 되므로 균형 있는 삶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들숨이 우선한 잘못된 호흡 법을 배제하고 날숨만 의식하는 호흡을 정신수행에 도입함으로서 들끓던 의식[번뇌]을 통제할 수 있다. 우곡선원에서 마음 수행의 기초로 삼고있는 날숨호흡은 지복(至福)은 반드시 낮은 곳에 머문다는 이치를 가장 손쉽게 이해케 하였으며 강건한 심신(心身)이 곧 평상심이 되는 초석임을 새삼 깨우치게 하였다.
「생각을 놓고 비우고 버려야 올바른 지혜가 일어나듯이 호흡법의 제일 요건은 날숨만 생각하지 들숨은 꿈에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3. 수행으로서의 호흡
호흡으로 심신의 평정을 꽤한다는 것은 깨달음이라는 궁극적 삶을 위한 마음공부의 기본적 방편일 뿐이다. 무슨 특별한 호흡 법이 수행의 전부인 것 같은 생각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할 일이다.
호흡 법은 그것이 무엇이든 피안의 땅에 이르기 위한 방편이며 강을 건너기 위한 나룻배 역할 일 뿐이다. 강을 건너게 해준 나룻배가 고맙다고 하여 그 나룻배를 짊어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 듯 야속하게도 마음수행에서 놓아버려도 아무런 걸림이 없는 의식의 첫 단계가 결국 호흡인 것이다. 호흡은 수행자가 바른 수행을 이루도록 하는 최상의 방편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이를 끝까지 잡고 있다면 이 또한 수행정진에 걸림돌이 된다.
수행이 잘 여물어지면 호흡은 지극히 당연한 생명 작용이기에 기법에서 완전히 놓아지며 오로지 활짝 깬 순수의식으로 전환되는 길만을 모색하게 된다. 그것은 오로지 겸허한 마음 바탕이 되는 놓고 비우고 버리는 수행을 해야만 흔들림 없는 올바른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뜻하는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있음을 말한다.
걸림 없는 자유는 반드시 흔들림을 유발하는 고(苦)를 여윈 이후의 결과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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