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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 수행을 지어감에 있어 저는 수행력이 일천한 초심자에 불과하기에 나의 미미한 수행 경험으로 도반님들과 같이 나눌 수 있는 얘깃거리가 될 수 있을까 해서 이 글을 쓰는데 많은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저의 이야기가 앞서 수행을 지어 가는 도반님들에게 도움은커녕 잘못된 모습으로 비춰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도반님들의 수행 경험담을 통해서 얻은 것들이 제 공부를 삼는데 소중한 간접경험이 되었기에 저의 수행과정에서 느끼는 순간들을 점검 받을 수 있는 동기가 될 것 같아 이 글을 씁니다.
일전에 부산 해운대에서 어느 거사님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거사님은 모 대학 행정학과에 재직중인 교수님이신데 고시를 준비중인 제자들과 얘기를 해보면 어떤 학생이 고시에 합격할 수 있을 것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고시를 합격한 학생들은 공부 중에 재미있는 표현으로 "덜커덕"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그 덜커덕 이라는 경험은 한두 번은 고시시험에 떨어져도 좌절하지 않고 재도전하여 합격하는 원동력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 역시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저는 어떤 일을 할 때마다 그런 경험을 종종 했으며 마음공부를 하는 지금도 가끔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들이 계속해서 수행을 할 수 있는 동기유발이 된 것은 물론 점점 확신을 쌓아 가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수행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막연함과 나는 지금 제대로 공부가 되고 있는지 또, 과연 나도 그렇게 수행을 지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염려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수행력을 증장 시킬수록 호흡은 조금 더 깊어지는 것 같고 밖으로 분산되었던 생각들이 조금씩 내면으로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은 어떤 특별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수행을 지어가다 보면 사람의 근기에 따라 드러나는 경계가 조금씩 다르고 또한 육식(六識)이 맑아지면서 나타나는 일종의 경계로써 이것은 불보살의 가피력으로 지혜의 문을 열어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불 종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에 계속해서 맛을 들인다든지 그러한 경험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다음단계를 위하여 보림을 해야 된다는 생각도 아울러 하고 있습니다. 수행은 꼭 이래야 한다는 법칙 같은 것은 없을 듯 합니다.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기 때문에 수행을 지어 가는 모습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기에 길은 스스로 개척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단지 제가 지금까지 선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는 부분은 원래 인간은 무명(無明)만 밝히면 그것이 자성(自性)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성이 밝아지는 과정이 돈오(頓悟)라고 하며 무명이라는 업식(業識)때문에 자성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명의 종자는 전생의 업 인자(因子)와 금생의 보고, 듣고, 맛본 습(習)으로 이루어졌으며, 무명을 녹이려면 공덕을 쌓아야 하고, 팔정도(八正道)에 입각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무명이 녹아 자성이 드러났을지라도 물들지 않은 정(淨)의 상태로 다듬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이렇게 완전한 정(淨)으로 다듬어 졌을 일념(一念)된 마음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가장 효율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무명을 걷어내고 마음을 고요히, 정(淨)의 상태로 맑히는 방법으로 법문, 실상관법, 좌선과 호흡, 만행, 백팔배 정진, 독경 등 수행에서 가장 효율적이라 할 수 있는 우곡선원 방편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앞서가신 조사들과 牛谷 법사님의 수행력을 거울삼아 올바른 수행을 지어갈 수 있는 인연 복을 만날 수 있었던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저를 수행자로 맞아들여 따끔한 경책과 보살핌으로 인도해 주시는 본 우곡선원 도반님들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 저는 요 며칠동안 화두가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탄생을 고(苦)로 본다면, 저의 전신 뿌리는 결국 일기[一氣]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라 할 수 있고, 처음탄생 그 순간이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다면, 인간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최 상승점인 해탈 또는 깨달음이 있는 것이지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서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라는 문제에 대하여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내린 결론은 삼라만상은 성주괴공 생주이멸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든 그것은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주어진 역할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역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력을 더 높여 윤회(輪回) 고(苦)를 면할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에 더 충실하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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